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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8도까지 떨어진 11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앞 사거리. 추운 날씨 탓에 귀마개·목도리 등으로 ‘중무장’한 시민들이 발길을 재촉하는 거리 한복판에 섰다.
구세군이 지난 1일 시작한 자선냄비 모금활동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소속 사관학생 변종혁(37)씨는 “꼭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모금을 호소하는 말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 사람들의 관심은 크게 달라진다”고 귀띔했다.
“어려운 이웃을 도웁시다” “여러분의 작은 손길이 큰 힘이 됩니다” “자선냄비는 여러분과 함께 하는 사랑실천운동입니다”
자선냄비팀장인 변씨가 알려준 30여 가지의 참고용 멘트 중 비교적 간단한 문장 세 개를 외운 뒤 마이크와 핸드벨을 들었다. 검정색 제복 차림의 사관학생들과 달리 왼쪽 가슴에 ‘구세군’(Salvation Army) 마크가 새겨진 빨간색 제복을 입었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옷깃을 스며드는 찬바람 탓에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이하였다.
연말 거리 곳곳에서 들을 수 있는 익숙한 말이었지만 막상 해 보려니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추운 날씨 탓에 입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지켜보기 안쓰러웠는지 변씨는 “추울 수록 입이 금방 얼기 때문에 되도록 쉬지 않고 말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웃을 도웁시다. 사랑을 실천합시다. 정성은 힘이 됩니다.”
방금 외운 문장들이 머리 속에서 뒤엉키면서 토막토막 겨우 튀어나왔다. 한 손으로 핸드벨을 흔들랴, 외운 말을 외치랴 박자가 전혀 맞지 않았다. 간단한 발음조차 뭉개기 일쑤였다. 모금활동 시작 10분 만에 부모 손을 잡고 온 어린 아이가 2000원을 자선냄비 안으로 넣었다.
정경희(35·여)씨는 “남보기에 적은 액수라 잠시 머뭇거렸다”면서 “아이에게 지금부터라도 이웃을 돕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고 ‘적은 액수라도 괜찮다’는 말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평균 10분 정도에 한 번 꼴로 자선냄비를 찾는 손길이 이어졌다. 동전을 탈탈 털어 넣는 학생부터 지갑에서 만원 한장을 꺼내 넣고는 ‘추운데 수고한다’며 격려하는 중년 신사까지 각양각색이었다.
변씨는 “동전과 1000원짜리 지폐 한 두 장을 주섬주섬 꺼내더니 ‘돈이 없어 미안하다’는 시민도 있다”며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진다”고 말했다.
3시간 정도 지나자 온몸이 꽁꽁 얼어붙기 시작했다. 손에 쥔 핫팩과 발바닥에 붙인 핫팩도 별 소용이 없었다. 추위에 떠는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캔커피와 핫팩을 놓고 갔다. 몸이 좀 녹으니 입도 풀리고 핸드벨을 흔드는 손도 점차 박자감을 찾아갔다.
모금 활동 시간(낮 12시~오후 8시)내내 서 있는 구세군을 위해 가게 한 켠에 쉴 곳을 제공하는 상인들도 있었다.
근처 건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 업주는 “이웃을 위해 좋은 일 하시는 분들인데 이렇게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라며 한사코 이름 밝히기를 거부했다.
점심식사와 주차는 인근 명동 롯데백화점에서 해결한다. 백화점 측은 직원 식당과 주차장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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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씨는 “가끔 ‘이렇게 모은 돈은 어디에 쓰느냐’며 물어보는 시민들도 있다”면서 “정확한 건 수치를 통해 비교해봐야 알겠지만 ‘이영학 사건’ 이후 모금이 줄어든 것 같기는 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국에서는 1928년 12월 15일 당시 한국 구세군이 서울에서 처음 시작해 지난 90년간 대표적인 모금 및 나눔 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구세군은 올해 140억원을 목표로 오는 31일까지 모금활동을 진행한다. 11일 현재까지 전국 각지에서 8억여원의 정성이 모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0% 수준이다.
구세군 관계자는 “‘이영학 사건’ 등 일련의 사태로 기부 문화가 위축되고 있는 분위기가 퍼질까 걱정”이라며 “홈페이지를 통해 모금 사용처를 공개하는 등 시민들의 성금을 투명하게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직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분들이 많으니 동참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