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세상이 어수선한 때가 또 있었을까? 물가는 오르고 경기는 하락세이며 디플레 현상, IS(이슬람국가) 그리고 북핵으로 인한 도발이다 뭐다 하는 상황에 선거로 인한 정치 공방이 뜨겁게 날선채로 하루하루를 혼란 속에서 지내고 있다.
이 상황 속에서 웬 봄타령인가 싶을게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어둠속에서 빛을 본다. 겨울은 모든 생명이 죽거나 잠드는 그런 시간이다. 춥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가장 무거운 땅을 뚫고 헤쳐나오는 새싹은 그 어떤 것보다도 힘겨운 싸움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승자다. 언땅을 계속 두드리고 두드림 속에서 표면은 기온의 차이로 점점 약해지고 약해진 땅을 여린 싹이 뚫고 나오는 것이다. 그 고통이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뚫고 나온 새싹에게 한줄기 빛은 그 어떤 광명보다도 더 깊은 영광이 아닐까 한다.
색에도 소리가 있다. 새싹의 소리는 어떨까? 아주 작고 고요한 소리같지만 그 안의 울림은 어떤 것보다도 큰 울림통이 내재되어 있다.
아이들의 소리를 색으로 표현하자면 노랑이 쉽게 떠오른다. 그리고 노인의 짙은 음성에서는 탁한 그레이가 연상된다. 소리는 파장으로 그 색의 깊이를 알게 된다. 장파장, 중파장, 단파장이 바로 그것이며 그 원리는 소리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소리가 내는 파장과 색을 지각하게 하는 빛의 파장을 매칭해구성한 것으로 음(音)에서 색을 느끼고 색을 표시할 수 있는 것, 즉 소리를 통해 색을 연상하게 한다하여 색음현상(色音現想)이라 한다. 빨주노초파남보의 빛의 굴절을 통해 나오는 색을 음으로 연상하여 나열하면 도레미파솔라시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색음현상을 보다 과학적으로 풀어놓은 시스템이 있다. 세계 최초로 소리와 빛의 상관관계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이를 실용화할 수 있도록 알고리즘화한 하모니칼라시스템이 그것이다.
하모니칼라시스템의 기업비전은 다음과 같다. ‘파동으로써의 빛과 소리가 조화를 이루고, 음악과 미술, 과학과 예술, 동양과 서양, 음과 양, 정신과 육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조화돼 인간이 자연과 온 우주와 온전한 조화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모니칼라시스템은 화성법을 적용해 소리를 빛으로, 그리고 빛을 소리로 상호대응 변환시키는 원리와 응용 컨텐츠이며, 조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상생의 컨텐츠입니다.’
소리를 통해 색을 보는 것이다. 색을 통해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화성과 연결해 구성한 논리적인 시스템인 것이다. 음을 입력하면 음에 따라 컬러 팔레트가 나타나고 팔레트에 따라 화성법에 근거해 배색을 이루는데, 장조인지, 단조인지에 따라 다양한 뉘앙스가 톤으로 표현된다.
화성법을 통해 나타나는 봄의 소리는 어떨까? 입춘이 되면 ‘입춘대길(入春大吉)’이라고 쓴 종이를 대문마다 붙여 놓았던 그리고 복조리를 사라고 외치던 그 목소리에 담겨온 봄의 소리는 어떨까?
복조리에 담겨있는 쌀을 일어올리듯 복이 수북히 붙어있으라는 희망과 기원을 뜻을 품어 노란 색이 떠오른다. 더불어 ‘복조리 사시오’라고 큰소리로 외치던 어느 장사치 아저씨의 울림통 큰 목소리에서도 진한 노란색이 전해져 온다. 어쩌면 다른 의미보다는 이 계절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희망의 메시지다.
희망의 메시지가 담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많아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에서 가장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가 1위라고 하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조사의 툴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소통하는 언어에서 도출되는 부정적인 단어였다. 우리나라는 관용적으로 ‘맛있어 죽겠다’, ‘행복해서 죽겠다’, ‘좋아 죽겠다’, ‘예뻐 죽겠다’, ‘보고싶어 죽겠다’, ‘피곤해 죽겠다’, ‘아파 죽겠다’ 등등 ‘~~해서 죽겠다’라는 말이 상당히 많다.
노란색에 다른 색이 첨가되면 부정적인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예컨대 가십거리를 다루는 옐로우페이지나 노란수배지 등처럼 긍정성을 잃고 변질될 수도 있다. 어쩌면 희망이라는 것이 쉽게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노랑이 다른색과 섞이어 변질된 언어가 되는 것은 그것과 상통하지 않을까?
복조리에 담겨있는 기원과 희망의 메시지 그리고 봄이 되어 싹을 틔우는 여린 새싹들에도 모두가 희망의 바램이 담겨져 있듯이 봄이 오는 길목에서 그 희망의 끈을 잡고 긍정의 메시지를 전파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