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보이지 않아도 여행 가는 이유? 더 많이 느낄 수 있죠"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장병호 기자I 2025.04.16 05:35:00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작가 조승리
베트남·백두산 등 시각장애인의 여행기
낯선 여행이 새로운 감각 깨워
"소외받는 동료 이야기도 쓰고파"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경리가 꿈이었던 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안마사로 살던 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운명은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까요?”

조승리 작가. (사진=조승리 작가 제공)
조승리(39) 작가가 최근 펴낸 두 번째 에세이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세미콜론)에 직접 쓴 작가 소개글이다. 책 내용이 절로 궁금해진다. 책은 조 작가가 베트남 나트랑(나쨩)과 하노이, 말레이시아 페낭, 일본 도쿄, 홍콩 마카오, 필리핀 클라크, 백두산 천지 등을 다녀온 여행기를 담고 있다.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으로 느낀 여행기

조승리 작가. (사진=조승리 작가 제공)
시각장애인이 쓴 여행기라는 점이 흥미롭다. ‘앞을 보지 못해도 여행을 할 수 있는 걸까’ 잠시 생각했지만, 책장을 넘기면 이런 생각이 뿌리 깊은 편견임을 깨닫게 된다. “식사를 마치고 시내 구경을 시작했다. 매연과 뒤섞인 두리안 냄새가 내 코끝을 간질였다. 이 도시에 깊숙이 밴, 살아 있는 나트랑의 냄새였다.”(98~99쪽)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으로 느끼고 경험한 낯선 여행의 순간을 생생하게 담아낸 문장이 읽는 이의 감각을 자극한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여행기를 책으로 낸 이유가 궁금했다. 조 작가는 15일 이데일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여행이 시각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낯선 공간에 가면 깨어나는 새로운 감각을 느끼는 것, 그것이 여행이 주는 축복임을 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조 작가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왔다. 시골에서 자라나 동네 언니들처럼 은행 경리가 될 거라 생각했던 조 작가는 15세 때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았다. 앞을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에 무작정 도서관을 찾아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물론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성인이 된 뒤엔 다른 시각장애인들처럼 안마사로 일했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손님들과의 만남이 영감으로 다가왔다. “사람의 몸에는 그들의 역사가 스며들어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글을 쓰기 시작한 건 10년 전부터다. 몸이 아파 잠시 일을 쉬던 중 우연히 장애인 수필 공모전을 접했다. 그냥 한 번 써본 글이 얼떨결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여러 공모전에 글을 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글을 썼다.

조 작가의 재능은 2022년 산문 교실에서 선생님으로 만난 동화작가 박현경을 통해 마침내 빛을 발했다. 박 작가는 조 작가의 글이 독자를 움직일 것이라고 확신했고, 샘터 문예공모전에 나갈 것을 권했다. 조 작가는 2023년 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같은 해 첫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내면서 진짜 ‘작가’가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추천해 화제가 됐던 책이다.

“어두운 주제를 밝게 꺼낼 것”…내달 단편소설 발표

첫 책을 낸 뒤 독자들을 만나면서 조 작가의 삶은 또 한 번 달라졌다. 그는 “제 글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삶에 큰 의미가 됐다”며 “독자들이 저에게 바라는 것은 장애라는 핑계를 대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된 뒤에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글쓰기를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두 번째 에세이는 여행기 외에도 조 작가가 일상에서 겪은 진솔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남들이 흉보던 친구가 자신을 찾는 게 부끄러워 모른 척 했을 때 느꼈던 비겁함, 아버지와 살가운 모습을 보이는 수양 할아버지 손녀를 향한 질투, 자신의 장애를 희롱하고 이용하려는 아주머니들의 ‘뒷담화’를 듣고 치밀어오른 분노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러면서도 삶에 대한 감동과 기쁨을 찾아가는 낙천적인 태도가 조 작가의 삶을 계속 응원하게 만든다.

운명은 조 작가를 어디로 또 데려갈까? 그는 “20년 동안 안마사로 성실히 일했는데 앞으로 20년은 안마사는 물론 작가로도 열심히 일하고 싶다”며 웃었다. 다음 달에는 단편소설도 발표할 예정이다. 조 작가는 “내 안에 고여 있던 이야기를 다 꺼내놓고 나니 이제 주변이 보인다. 소외받는 동료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며 “어두운 이야기를 밝게 꺼낸다는 사명감으로 글을 쓰겠다”고 전했다.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