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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타는 지구, 사람이 부른 火

장병호 기자I 2025.04.09 05:30:00

기후변화의 경고 ''대형화재''
''파이어 웨더'' 캐나다 포트맥머리 화재 추적
석유산업과 기후변화 연관성 밝혀
''미래를 팔다'' 온실가스 감축 기술 이미 개발
사회·정치적 변화 함께 이뤄져야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전 세계적으로 대형 화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산불이 발생해 28명 이상이 사망하고 20만 5000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2만 3200㏊ 이상이 불에 탔다. 우리나라도 대형 화재를 피하지 못했다. 지난 3월 14일부터 영남권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8일까지 사망자 31명, 부상자 45명이 발생했고 불에 소실된 면적은 무려 4만 8675㏊에 달한다.

지난 3월 22일 경북 의성군 의성읍 중리리에서 산불이 옮겨붙은 공장건물을 한 주민이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산불의 원인으로 흔히 인간의 부주의로 인한 실화(失火), 그리고 고온 건조한 날씨가 손꼽힌다. 그러나 비단 이것만이 문제일까. 전문가들은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결과로 생겨난 탄소 배출, 이로 인한 기후 변화가 대형 화재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는 2권의 책이 최근 나란히 출간됐다. ‘파이어 웨더’(곰출판), ‘미래를 팔다’(에코리브르)다.

“현대 인류는 불태우는 사람”

2016년 캐나다 앨버타주 포트맥머리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 (사진=곰출판)
‘파이어 웨더’는 ‘뉴요커’, ‘내셔널 지오그래픽’, ‘가디언’ 등에 글을 써온 논픽션 작가 존 베일런트가 2016년 5월 캐나다 앨버타주 포트맥머리에서 발생한 산불 사건을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파이어 웨더’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끌어온 석유 산업과 이로 인한 기후 변화가 포트맥머리 산불과도 연결된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한다. 2023년 영국 논픽션 분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베일리 기포드상을 수상했고, 지난해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16년 5월 어느 화창한 오후, 포트맥머리에서 약 8㎞ 떨어진 거리에 있는 임야에서 작은 불길이 피어올랐다. 사람들은 숲에서 화재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는 연기 기둥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선 봄여름이면 불길에서 피어난 연기구름이 지평선에 나타나는 일이 흔했다. 사람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시 당국도 주민에게 대피 명령을 내리는 대신 상식적인 대처만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이 화재는 15개월이 지난 2017년 8월이 돼서야 완전히 진압됐다. 최소 9만여 명이 대피하고 구조물 2500여 채, 산림 25만 9000㏊(2590㎢)가 불에 탔다.

저자가 포트맥머리 화재를 주목한 이유는 이 지역이 석유 산업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곳이라는 점이다. 인류가 지구에 살아온 이래로 대기가 인간에 의해 변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와 함께 석유 시대가 시작하면서 인간이 만들어내는 이산화탄소는 점점 늘어났다. 이산화탄소는 어디로 사라지지 않고 대기 안에 고스란히 쌓이고 있으며, 이는 지구온난화라는 기후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파이어 웨더’는 대형 화재가 기후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치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저자는 “현대 인류는 사상 최대의 연소 기관을 만든 존재이자 연소 기관 그 자체가 된 호모 플라그란스(Homo flagrans), 즉 ‘불태우는 사람’으로 기억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그러면서 “인간이 가진 에너지와 창의력을 연소와 소비가 아닌 재생과 쇄신에 쏟는 것, 그것이 자연이 정한 인류의 올바른 목표이고 자연이 안내하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라고 강조한다.

정치적 결정·경제활동의 변화 필수

책 ‘파이어 웨더’(왼쪽), ‘미래를 팔다’ 표지. (사진=곰출판, 에코리브르)
‘파이어 웨더’가 대형 화재와 기후 변화의 관계를 살펴본다면, ‘미래를 팔다’는 지금의 세상이 이러한 기후 변화를 제대로 막지 못하는 원인을 파헤친다. 막스 플랑크 사회학연구소 소장이자 쾰른 대학교 사회학 교수인 옌스 베케르트는 기후 변화가 더 이상 과학 연구의 중요한 과제가 아니며 기술적 문제도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는 기술은 이미 많이 개발됐다. 이를 위한 정치적 결정과 경제 활동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근거가 될 지식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이는 실제 행동이나 변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저자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사회적·정치적 질서가 함께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기업·정치·국민의 의사 결정은 단기적인 관점에만 치우쳐 있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환경적 피해를 무시하거나 경시하고 있고, 이 때문에 기후 변화를 막으려는 노력이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는 어쩌면 후손들의 미래를 미리 당겨쓰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끊이지 않는 대형 화재는 기후 변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경고’의 메시지다. 이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두 책이 전하는 공통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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