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의 한 장면.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은 주인공 키키를 향해 등장인물들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면의 고통을 부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넘버다. 노래의 메시지에 공감한 듯 객석에선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장애를 다룬 뮤지컬이 연이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정신장애는 그동안 공개적으로 언급해서는 안 되고 피해야 할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정신장애를 마냥 숨겨서는 안된다는 사회적인 인식 변화에 따라 무대에서도 이를 정면으로 다루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정신장애 인식 변화, 뮤지컬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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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성 인격장애는 정서, 행동, 대인관계 등이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성격장애다. 대인 관계에서 누군가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심해지면 자해와 자살 시도 등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작품은 키키를 통해 경계성 인격장애 증상이 실제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가족, 연인, 직장 동료와의 관계로 풀어내며 키키가 ‘정신장애를 겪는 이상한 사람’이 아닌 ‘우리 주변에 있을 수 있는 누군가’로 바라보게 만든다.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유쾌하면서도 공감 가게 풀어냈다. 전작 ‘실비아, 살다’처럼 이번 작품도 익숙한 뮤지컬 문법에서 벗어나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팝, 록, 랩 등 다채로운 음악, 1인 다역을 소화하는 배우들의 열연이 그러하다. 배우 이수정, 이휘종이 키키 역을 맡고 남경주, 김수정, 신진경, 문지수, 이민규, 전성혜, 장두환이 멀티 역인 ‘호스트’로 출연한다.
작품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잘못된 감정은 없다는 것, 그리고 정신장애는 치료를 통해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먼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윤지 연출은 “성격장애는 수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지만 잘 인지하지 못한다. 이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며 “인정받는다는 것, 이해받는다는 것, 지지받는다는 것에는 굉장한 힘이 있다. 함께 살아나갈 용기를 나눴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연은 오는 25일까지 이어진다.
◇정신장애 소재 해외 뮤지컬, 퓰리처상·토니상 수상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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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선 오래 전부터 정신장애를 뮤지컬로 다뤄왔다. 오는 3월 5일부터 5월 19일까지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이 대표적이다. 극작가 겸 작사가 브라이언 요키, 작곡가 톰 킷의 작품으로 2009년 제63회 토니상 음악상·편곡상·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뮤지컬로는 이례적으로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을 받았다. 과거의 상처로 16년째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엄마 다이애나, 그런 엄마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딸 나탈리, 다이애나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며 흔들리는 가정을 지키려 노력하는 아빠 댄, 다이애나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아들 게이브 등을 통해 현대 사회의 가족 간의 갈등과 개인이 겪는 고통 등을 공감 가게 풀어냈다. 최정원, 배해선, 이건명, 마이클 리, 산들, 유회승, 홍기범, 이서영, 김환희 등이 출연한다.
다음달 아시아 초연을 앞둔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도 있다. 화 ‘라라랜드’로 잘 알려진 음악팀 파섹 앤 폴(벤지 파섹, 저스틴 폴)이 작사, 작곡을 맡아 2017년 제71회 토니상 최우수 작품상 등 6개 부문을 휩쓴 화제작이다.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주인공 에반 핸슨의 이야기다. 에반 핸슨을 통해 가정, 학교, 회사 등 사회와 집단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김성규, 박강현, 임규형이 에반 핸슨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오는 3월 28일부터 6월 23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