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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마천루가 삐죽 선, 대도시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경. 높은 빌딩이 내리누르는 중압감을 잠시 거둬내면 크고 낮은 높낮이며, 저마다 달리 생긴 색다른 ‘숲’에 빠져들 수 있다.
기대치 못한 덤도 있다. 유리로 싸인 건물창에 비친 도시 속의 도시를 들여다보는 재미 말이다. 같은 풍경이어도 누구의 눈에 드는가에 따라 다른 세계가 열리는 그곳. 작가 이영희가 담아낸 도시는 이처럼 자유롭다.
작가는 첨단 도시의 풍경을 화면에 옮겨왔다. 그 방식이 독특하다. 한국 전통 색과 기법을 바탕으로 자연소재에서 추출한 안료를 보태 이제껏 보지 못한 광경을 꺼내놓는 거다. 가령 오배자나 콩즙 같은 재료를 녹여내기도 하고, 한지의 물성을 살려 오리고 붙인 화면을 꾸리기도 한다. 덕분에 채색이든 콜라주든 튀어도 튀지 않는, 없어도 있는 듯한 분위기를 낸다. 지극히 한국적이면서 앞서 나간 현대미술의 시각적 확장이라고 할까.
역동성보단 정체성에 방점을 찍었다. 작가의 도시는 고요하고 단아하며 사색적이다. 그 형상에서 옛 정서 물씬한 ‘산과 물’을 봤나 보다. ‘도시산수’(2020)라 했다.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갤러리그림손서 여는 개인전 ‘도시산수’에서 볼 수 있다. 장지·분채·콩즙. 91×40㎝. 작가 소장. 갤러리그림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