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장수 대기업인 두산그룹을 둘러싼 유동성 위기설이 가시질 않고 있다. 주력 계열사들이 실적 악화의 늪에 빠지면서 그룹 전반의 재무안정성이 저하된데다 향후 개선의 여지도 쉽사리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면서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마저 여의치 않은 터라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유동성 확충을 위해 사업부 매각과 자회사 기업공개(IPO)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선 두산그룹의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을지 진단해본다. [편집자주]
[이데일리 김기훈 기자] 두산그룹 핵심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042670)가 난항을 겪던 공작기계사업부 매각을 완료한 데 이어 자회사 두산밥캣을 국내 증시에 연내 상장하기로 하면서 유동성 위기론을 잠재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당장 꽉 막힌 유동성에 숨통을 틔워 재무구조를 개선할 것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공작기계, 1.1조에 MBK로 매각…부채비율 267%→203%
두산인프라코어는 이달 초 공작기계사업부를 1조1308억원에 MBK파트너스로 매각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던 스탠다드차타드프라이빗에쿼티(SC PE)와 세부조건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협상이 결렬되면서 다른 후보들과 추가 협상에 나서는 등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매각이다. 그 과정에서 1조원대 중후반으로 점쳐지던 매각가격은 1조원대 초반으로 낮아졌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작년 말 가결산 연결재무제표 기준 보유현금은 9000억원 수준으로 1년 내 상환기한이 돌아오는 차입금 규모가 2조4000억원에 이른다. 최근 극심한 실적 부진에 따른 현금창출력 저하와 신용도 하락으로 인한 금융시장 접근성 제약으로 유동성 확보가 어려운 터라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 수익성이 뛰어난 공작기계사업부문을 울며 겨자 먹기로 판 것도 이 때문이다. 두산인프라코어가 매각대금 전액을 차입금 상환에 사용한다고 전제하면 작년 말 가결산 연결재무제표 기준 순차입금(총차입금에서 현금성자산을 뺀 금액)은 5조522억원에서 3조9214억원으로 줄어들고 부채비율은 267%에서 203%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자비용에서 이자수익을 차감한 순이자비용 역시 2670억원에서 2000억원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두산밥캣 연내 국내 IPO 추진…최대 8000억원 조달 기대
두산인프라코어가 유동성에 활로를 찾기 위해 공작기계사업부 매각과 더불어 추진해온 것이 소형건설장비 자회사 두산밥캣의 기업공개(IPO)다. 당초 시일을 두고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 증시 상장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돌연 연내 국내 증시에 상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유동성에 목마른 두산인프라코어가 그만큼 자금 조달이 급했던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한 크레딧시장 전문가는 “해외 증시 상장을 추진하는 와중에 유동성 리스크가 또다시 불거질 가능성을 미리 차단한 것”이라며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미국이나 유럽 증시 상장 여건이 나빠진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007년 두산인프라코어에 피인수된 밥캣은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여파로 적자 행진을 보이면서 한동안 그룹의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으나 2010년 이후 북미 건설시장 회복과 더불어 흑자를 내기 시작해 지금은 오히려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업계는 두산밥캣의 상장 후 기업 가치가 3조원 가량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선 기업공개 전 투자유치(Pre-IPO) 당시 국내 기관들이 투자한 전환우선주(총 1만주) 1주당 발행가격이 2억8550만원이었던 점을 감안해 나온 수치다. 두산밥캣 지분 75.5%를 보유한 두산인프라코어가 대주주 지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지분을 제외한 최대 35.5%의 지분을 구주매출할 경우 최대 8000억원 수준의 자금 조달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단기 유동성 확보에 그쳐…밥캣 상장 불확실성은 변수
유동성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두산인프라코어의 노력에 대해 IB업계는 일단 긍정적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작기계사업부 매각과 두산밥캣 상장 추진 모두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임시적 방편일 뿐 언제 또다시 심각한 상황에 부닥칠지 모른다는 우려의 시선도 만만찮다. MBK로 주인이 바뀐 공작기계사업부의 경우 실적 부진에 허덕이는 두산인프라코어에 든든한 버팀목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매각이 장기적으로 사업안정성 약화와 현금창출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2012~2015년 사이 공작기계사업부가 두산인프라코어 전체에서 차지하는 매출비중은 17.5%에 불과했지만 영업이익기여도는 평균 45.5%에 이를 정도로 매우 높았다. 김동혁 한기평 연구원은 “공작기계사업부문의 평균영업이익률이 10%를 상회한 데 비해 차입금 평균이자율은 5% 내외였다”며 “매출 감소에 따른 영업이익규모 축소가 차입규모 감소에 따른 금융비용 절감 효과를 웃돌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은 건설과 엔진사업부문은 앞선 구조조정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를 고려하더라도 관련 업황 전망이 어두워 수익성 개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두산밥캣의 경우 연내 상장 목표 달성을 위해 주관사 선정에 나서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국내 증시 여건이 녹록지 않은데다 건설기계업종 특성상 경기 변동에 민감하다는 점에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가 변수다. 설사 상장에 성공하더라도 자금 조달규모가 기대에 못 미친다면 두산인프라코어 재무구조 개선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수도 있다.
▶ 관련기사 ◀
☞왕태중 두산인프라 책임연구원, 마르퀴즈 세계인명사전 등재
☞고객님을 응원합니다. 주식매입자금은 부자네스탁론과 함께!
☞국내 기업, R&D 투자 대기업 쏠림..투자랭킹은 중국보다 떨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