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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자영 기자] 국내 기업이 운영하는 미술관은 사모님의 단순한 미술품 수집에서 ‘컬렉션’으로 규모와 소장품을 늘리며 전문적인 형태로 모습을 바꿔가고 있다. 고급취미 단계에 머물던 ‘사모님’이 미술품에 대한 관심도 전문지식을 갖춘 2·3세에게 경영을 넘겨주며 좀더 체계화하고 있다. 전문경영인을 관장으로 영입한 뒤 이전 시대와는 달리 미술과 전시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미대 출신 관장 ‘리움’이 이끄는 미술계 트렌드
삼성그룹은 재계 1위답게 국내 미술계를 이끄는 리더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삼성미술관 리움과 중구 태평로 삼성생명 빌딩 1층에 위치한 플라토미술관을, 또 용인에 호암미술관과 삼성어린이박물관을 두고 있다. 이건희 삼성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씨가 1995년부터 삼성그룹 미술관의 총괄 관장을 맡고 있다.
전통미술과 근현대미술, 세계 유명 현대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리움은 국내 최대 사립미술관으로 꼽힌다. 미술관 면적만 27만㎡(약 8400평)로 건물 외관 디자인부터 하나의 미술품과 같다. 세계 3대 건축디자이너 마리오 보타, 렘 쿨하스, 장 누벨이 설계하고 완공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리움의 전시는 특히 국내 미술계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열리는 전시에 따라 국내 미술계의 트렌드가 바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례로 리움에서 기획전으로 마련한 설치미술가 서도호 작가의 개인전 ‘집 속의 집’은 개관 이래 최대 관람객을 기록하고 서 작가를 스타덤에 올려놨다.
이건희 회장의 누나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도 미술에 조예가 깊다. 국내 유명 현대미술가의 작품을 상당수 소장하고 있는 이 고문은 강원 원주에 2013년 뮤지엄 산을 열었다. 뮤지엄 산은 유명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 건물을 비롯해 국내선 만나기 힘든 조각과 설치작품을 소장해 주요 관광코스가 됐다.
◇공대 출신 관장…‘아트센터나비’의 미디어아트
최근 떠들썩한 스캔들로 세간의 주목을 끈 SK그룹은 아트센터나비를 운영한다. 관장은 최태원 회장의 부인이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씨다. 미술애호가로 1984년부터 워커힐미술관을 운영하던 시어머니 박계희 전 관장의 뒤를 이은 노 관장은 공대 출신. 특이한 이력을 강점으로 살린 케이스다. 박 전 관장이 별세한 뒤 1997년부터 미술관을 물려받은 노 관장은 2000년 종로구 서린동 SK본사에 아트센터나비로 이름을 바꿔 오픈하고 미디어아트 분야에 주력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백남준 등의 미디어아트를 선보이며 이 분야서 가장 독보적인 컬렉션을 갖췄고 IT기업이란 그룹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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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뜬다…‘본태박물관’ ‘대림미술관’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부인인 이행자 고려산업개발 고문과 둘째 며느리 김선희 씨가 운영하는 본태박물관이 있다. 제주 서귀포시에 2012년 개관한 본태박물관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하고 최근엔 구사마 야오이의 작품을 소장·전시하며 제주의 관광코스로 떠올랐다. 호수와 정원, 건물이 빛과 어우러지는 외관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2014년에는 강남구 선릉로에 서울관을 열었다.
‘사모님’이 아닌 ‘아드님’이 운영하는 기업 미술관으로 눈여겨볼 곳은 종로구 통의동 대림미술관이다. 미술애호가인 장남 이해욱 부회장이 관장으로 있다. 젊은 감각 덕분인지 미술관은 요즘 20~30대의 핫플레이스로 자리잡았다. 특히 젊은 층의 감성을 사로잡는 기획사진전은 SNS 열풍과 맞물려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지난해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과 ‘헨리 빕스코브 스케치전’ 등이 모두 히트했다.
인기에 힘입어 대림그룹은 지난해 말 용산구 한남동에 디뮤지엄을 열고 대림미술관과 다른 전시로 투 트랙 전략을 세우고 있다. 대중성에 초점을 맞춘 현대미술과 디자인에 집중하면서 국내외 신진작가의 활동을 지원할 예정이다. 인근 지역과 연계해 ‘문턱이 낮은’ 미술관으로 운영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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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세는 기울었지만…미술사랑은 계속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기로 유명한 금호그룹은 계열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등 풍파를 겪었지만 예술계 지원을 멈추진 않았다. 클래식영재를 지원하는 한편으로 신진미술가 발굴에 앞장서고 있다. 종로구 삼청동 금호미술관은 박성용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인 박강자 관장이 이끌고 있다. 매년 4명의 영아티스트를 뽑아 전시를 열어주고 후원한다. 국내 중견작가 중 상당수는 금호미술관 영아티스트에 뽑혀 첫 전시를 했을 정도다. 다만 상대적으로 기획전은 약한 편이다.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 정희자 씨가 관장으로 있다. 한때 재계 서열 5위에 들 정도였지만 무리한 확장으로 그룹은 해체된 상태다. 정 관장 역시 홍라희 관장과 마찬가지로 미술을 전공한 재원이다. 덕분에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시도가 다채롭다. 현대미술작가 이불·오형근 등이 전시회를 열었고 최근 철원 비무장지대로까지 가서 펼친 ‘리얼 DMZ 프로젝트전’ 등이 눈길을 끌었다.
쌍용그룹도 기업은 해체됐지만 미술관은 건재하다.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부인인 박문순 씨가 관장으로 있는 성곡미술관이다. 자택을 리모델링해 만든 이곳은 국내서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손꼽힌다. 정기적으로 수준급 기획전을 선보이는 동시에 ‘내일의 작가상’을 통해 신진작가 발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외에 한진그룹과 태광그룹, 포스코는 사옥 내에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OCI그룹은 종로구 수송동에 ‘OCI미술관’을, 애경그룹은 삼청동에 몽인아트센터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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