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당시 퀴논항에서 미군물자의 수송과 하역을 도맡으며 그룹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국내에서 주한미군 수송을 책임지면서 쌓은 ‘신용’ 덕분이었다. 이른바 ‘퀴논의 전설’이다. 최소한 눈앞의 작은 이익을 신용과 맞바꾸는 우를 범하지 않았던 것이다.
평생을 두고 제조업 진출 여부를 고민했다지만 조 회장은 늘 수송 ‘외길’로 되돌아왔다. 이는 한진과 한진해운, 대한항공이 각각 땅길과 바닷길, 하늘길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게 된 배경이다. 사업다각화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대기업들은 불황의 그늘이 깊어지면서 생존을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이에 비춰 볼 때 이미 반세기 전에 ‘선택과 집중’을 실천했던 조 회장의 혜안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국적기를 타고 해외나들이를 한 번 하는 게 소망”이라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마디는 적자투성이 항공공사를 인수해 대한항공을 설립하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국익을 위해 밑지면서도 해야 하는 사업이 있다는 게 조 회장의 생각이었다. 대부분의 기업인이 ‘사업보국’을 말하지만 정부가 팔을 비틀지 않는 한 손해를 감수하고 공익을 실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회사돈을 쌈짓돈으로 여기다가 국민의 지탄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내외 주요 인물 1500여명의 성공비결을 분석해온 저자는 조 회장의 경영을 예술로 정의했다. 실제로 사업에 대한 조 회장의 통찰과 영감은 예술의 경지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한진그룹이 국내 대표 물류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조 회장만의 철학과 신념을 지켜 온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업은 예술이고, 사업은 철학이다. 많은 기업인이 일독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