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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적의 도발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인류는 전쟁에서 영양을 충족하면서도 신속하게 먹을 수 있는 전투식량을 고안해냈다. 우리가 무심코 먹는 음식 중에는 전쟁에서 비롯된 것들이 꽤 있다.
서울 이태원이나 홍대 등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거리에서는 터키식 케밥을 파는 상점이 자주 눈에 띈다. 터키의 대표 음식인 케밥은 터키말로 ‘꼬챙이에 끼워 불에 구운 고기’를 뜻한다. 중앙아시아 초원과 아라비아 사막을 누비던 유목민들이 간편하게 고기를 구워먹던 것에서 유래했다.
케밥은 옛 오스만 투르크의 병사들이 고기를 얇게 조각내 칼에 꽂은 후 불 위에서 돌려가며 구워먹는 전투식량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고기를 통째로 굽게 되면 속까지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 비해, 조각난 고기를 칼에 겹겹이 꽂아 구우면 조리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케밥을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다.
특히 초원과 사막 등 땔감이 풍족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얇게 저민 고기를 굽는게 통구이를 하는 것보다 연료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이다.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외국인들은 기피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인기음식인 ‘청국장’ 찌개. 청국장찌개의 주재료인 청국장도 전쟁에서 비롯된 음식이라는 설이 있다. 전쟁통에도 빨리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장’에서 유래됐다는 의견이다.
우리 문헌에 청국장이 첫 언급되는 것은 <삼국사기>에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청국장은 왕가의 폐백품목 중 하나였다. 이후 조선 숙종 때인 1715년 실학자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 1766년 영조때 유중림이 산림경제를 보강한 <중보산림경제>에는 ‘전국장’(戰國醬)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전시에 만들어 먹는 장이라는 뜻이다. 책은 ‘잘 씻은 대두를 삶아 고석(볏짚)에 싸서 따뜻하게 3일간 두면 생진이 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청국장의 기원은 고구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만주지방에 걸쳐 말을 몰고 정복전쟁을 계속하던 고구려 기마병들이 먹던 전투식량이라는 설이다. 우리 선조들은 삶은 콩을 말 안장 아래 보관했다가 끼니 때마다 꺼내 먹었다고 한다. 말의 체온이 37~40℃ 사이어서 자연발효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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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수에 얇게 저민 고기를 살짝 익혀 먹는 요리인 샤부샤부(しゃぶしゃぶ)도 야전 요리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샤부샤부는 일본어로 ‘가볍게 씻거나 헹구는 모양’을 뜻하는 의태어다. 13세기 칭기즈칸이 정복전쟁을 펼치던 시기에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벗은 투구를 가마솥처럼 불 위에 걸친 후 식량으로 갖고 다니던 저민 양고기를 데쳐 먹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몽골인 사이에서 국물에 고기를 데쳐 먹는 조리방식이 유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의 훠궈, 일본의 샤부샤부등도 몽골식 전골요리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반면 우리역사 학자 중에서는 칭기즈칸의 몽골보다 앞선 삼국시대 당시 투구를 솥으로 삼던 병사들의 조리방식이 ‘토렴’ 문화로 변했고, 몽골이 이를 따라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토렴은 식은 밥이나 국수가 담긴 그릇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냈다가 해서 밥이나 국수를 데우는 방식을 말한다. 특히 샤부샤부라는 일본어는 ‘밥에 더운 차를 살짝 붓는 모양’을 뜻해 토렴 방식을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다. (이 기사는 국방일보와 방위사업청 블로그 등을 참고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