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화가 박수근, 반세기 가도 저물지 않는 이유

김용운 기자I 2015.05.15 06:42:10

박수근 타계 50주기 추모전 두 곳서
-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우물가' 등 대표작 50여점…1950년대 창신동 달동네 풍경
- 강원 양구 박수근미술관
습작·다큐 등 367점…생전 삶의 흔적 옮겨와

박수근은 서울 창신동에서 마주친 아낙들의 일상과 삶에서 한국의 미를 발견했다. 연도미상작 ‘노상’(사진=동대문디자인플라자).


[양구(강원)=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간경화 후유증으로 백내장이 발병해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그래도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뿔테안경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릴지도 모르는 개인전을 위해서였다. 여권과 전시도록에 쓸 사진이 필요했다. 그러나 건강은 계속 나빠졌다. 1965년 5월 6일 새벽, 50대 초반의 화가 가장은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이틀 뒤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향토와 민중을 슬프도록 사랑했던 서민화가 박수근 씨는 6일 악화된 간응혈증으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한국은 가장 개성적이고 소박했던 예술가 하나를 잃었다.”

박수근(1914∼1965) 화백이 타계한 지 50주기가 되는 올해 그를 기리는 대규모 추모전이 서울과 양구에서 열린다.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이간수문전시장에서 오는 6월 28일까지 여는 ‘국민화가 박수근’ 전,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8월 30일까지 여는 ‘뿌리 깊은 나무 박수근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전이다.

1960년대 초반의 박수근. 여권과 전시도록을 위해 찍었다는 이 사진 속 뿔테안경과 정장차림은 그의 대표 이미지가 됐다(사진=박수근미술관).


▲대표작 한자리에 모은 ‘창신동 박수근’

DDP의 ‘박수근’ 전은 유화 ‘길가에서’ ‘노상’ ‘절구질 하는 여인’ ‘우물가’와 더불어 소설가 박완서의 장편 ‘나목’에 소재가 된 ‘나무와 두 여인’ 등 대표작 45점을 비롯해 수채화 5점 등 50점을 모은 대규모 전시로 꾸렸다. 박수근은 지금껏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높은 평가를 받지만 생전에는 단 한 차례의 개인전도 열지 못했다. 그가 타계한 후 개인화랑에서 7회, 사립미술관에서 1회 등 총 8차례 회고전이 열렸지만 늘 대표작이 다 모이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미술관이 아닌 DDP에서 성사된 회고전의 배경에는 박수근이 1952년부터 10여년간 DDP 인근 창신동 달동네 자택에서 작품활동을 한 이유가 컸다. 박수근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낙네와 아이들, 동네풍경은 창신동에서 봤던 일상의 모습이다. 전시를 기획한 박삼철 DDP 기획본부장은 “전시준비 단계에서 서울시립미술관에 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하지만 작품 속 실제 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지역에 위치한 DDP가 최종 낙점됐다”고 말했다.

박수근의 1962년 작 ‘나무와 두 여인’. 작가 박완서의 소설 ‘나목’의 소재가 된 작품이다(사진=동대문디자인플라자).


▲생전 모습 불러낸 ‘뿌리 깊은 박수근’

박수근미술관의 ‘뿌리 깊은 나무 박수근…’ 전은 박수근의 인간적인 모습과 습작, 그를 추모하는 또 다른 작품에 초점을 맞춰 추모전을 연다. 양구는 박수근의 고향이자 그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유화 11점을 비롯해 수채화 8점, 드로잉 100여점, 사진 80여점 등 총 367점에 달한다. 여기에 박수근과 동시대를 살았던 이응노, 남관, 김환기 등 근·현대작가의 작품과 박수근에 영향을 받은 후배작가들이 기증한 작품 100여점도 볼 수 있다.

특히 박수근이 한국적인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아 눈길을 끈다. 후견인이었던 마가렛 밀러 여사를 비롯해 이응노 등과 주고받은 편지도 볼 수 있다. 사진자료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가족을 사랑하고 작가로서 치열했던 박수근의 생전 모습을 짐작케 해준다.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제작한 다큐멘터리에선 미국 후견인들의 노력으로 박수근이 샌프란치스코에서 개인전을 열 뻔 했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그즈음 찍은 뿔테안경에 정장차림의 사진은 박수근의 대표 이미지가 됐다.

전시에 참여한 조덕현 작가는 가변설치작 ‘박수근 2014∼1914’를 통해 생전 박수근이 창신동 집마루를 화실삼아 작업하던 모습을 대형연필화로 재현해놨다. 그의 무덤에 함께 묻혔다는 아내 김복순 여사와 어린 아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가 왜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있다. 궁핍하면서도 사람다운 격을 잃지 않던 우리 시대 아버지의 초상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두 전시를 같이 봐야 박수근의 생애와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오는 8월 30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DDP에서 박수근미술관까지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점심식사 등을 포함해 3만원이다. 예약확인은 박수근미술관로 해야 한다. 30명이 차지 않으면 운행하지 않는다. 02-2153-0000(DDP), 033-480-2284(박수근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내 박수근파빌리온에 전시된 조덕현 작가의 ‘박수근 2014∼1914’. 박수근 부부의 생전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사진=김용운 기자).
박수근의 1954년 작 ‘절구질 하는 여인’. 박수근은 서울 창신동에서 마주친 아낙들의 일상과 삶에서 한국의 미를 발견했다(사진=동대문디자인플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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