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뉴욕 특파원, 임일곤 기자] 미국 법원이 배심원단이 원래 부과한 손해배상액 가운데 절반가량을 삭감키로 하면서 삼성전자(005930)로서는 일단 선방했다는 분위기다. 미국 법원이 한달 전 판결에서‘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를 의도적으로 침해했다’는 배심원단 평결을 뒤집은 데다 삼성전자가 애플에 물어줘야 할 배상액 규모까지 큰 폭으로 깎아줬기 때문이다. 다만 삼성의 특허 침해 자체가 부정된 것은 아닌데다 규모가 줄긴 했어도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했기 때문에 미국 법원의 1심 최종 판결은 사실상 애플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미국 새너제이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 루시 고 판사는 1일(현지시간) “배심원단의 배상액 자체는 수용할 수 없는 법적 이론에 근거해서 산출됐다”며 배심원들이 원래 부과한 배상액 가운데 4억5050만달러를 삭감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배상해야할 금액은 당초 작년 8월 배심원단이 평결한 10억5000만달러에서 절반 가까이 줄어든 5억9890만달러(원화 6500억원)다.
그러나 고 판사는 배상액 삭감과 관련된 삼성전자 모바일기기 14개의 특허침해 여부에 대한 재판을 새로 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 판사는 “삼성전자가 (특허 침해로 판정받은) ‘갤럭시 프리베일’을 비롯한 스마트폰과 태블릿PC 14개 기종의 특허 침해 여부에 대해 새로운 재판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애플이 합의하지 않는 한 배상액이 삭감된 모바일 기기의 특허 침해와 관련된 새 재판이 조만간 열릴 예정이다. 재심을 받게 될 제품 14종은 갤럭시 프리베일을 비롯해 젬· 인덜지·인퓨즈4G· 갤럭시S2 AT&T· 캡티베이트·콘티늄· 드로이드 차지· 에픽 4G· 갤럭시탭·넥서스S4G ·피를래니시· 트랜스폼이다. 이 가운데 갤럭시 프리베일은 배심원단이 5790만 달러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했으나 고 판사는 이 단말기가 침해한 것은 디자인이 아니라 특허 뿐이라며 배심원단의 손해배상액 산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미국 법원이 14개 제품에 대해 재심을 새로 열면 삼성이 애플에 지불해야할 배상액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 법원이 인정한 손해배상액 5억9950만달러에서 추가로 얼마나 늘어날 지가 관심이다. 다만 원래 배상금 총액인 10억5000만달러를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써 지난 2011년 4월 애플이 미국 법원에 삼성전자를 특허침해로 제소하면서 시작한 이른바 ‘세기의 특허소송’은 2년 가까이 진행되다 막을 내리게 됐다. 배상액 측면에선 애플이 사실상 승리했다고 할 수 있으나 삼성의 특허침해 고의성 등에 대해선 배심원 평결이 뒤집히는 등 애플이 완벽하게 이겼다고는 할 수 없다. 이번 소송에서 다루는 사안이 워낙 방대한데다 각각의 판결에 따라 두 업체의 희비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는 점 때문에 어느 누가 승리했다고 딱 부러지게 평가를 내릴 수 없는 것이다. 미국 법원이 삭감한 손해배상액 규모가 관련업계 예상을 크게 웃도는 40% 이상이라는 점도 애플로서는 반길만한 결과가 아니라는 평가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들도 법원이 손해배상액을 크게 줄인 것에 주목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미국 법원이 삼성전자와의 소송전에서 애플의 특허금액을 삭감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당초 애플의 10억달러 이상의 특허소송전 승리액 규모가 많이 줄게 됐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도 이번 판결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소송전을 계속 진행해 나갈 것임을 나타냈다. 삼성전자는 이날 ”법원이 배심원이 결정한 배상액 중 일부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재판을 결정한 것을 환영하며 법원이 인정한 배상액에 대해서도 검토 후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미국 법원은 14개 제품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심리를 언제 열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스마트폰 신제품 아이폰5와 갤럭시S3를 포함한 제품을 갖고 내년부터 다시 법정에서 맞붙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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