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지방 0'' 표기 철썩 믿고 과자 사셨나요?

조선일보 기자I 2009.03.03 08:12:33

식약청 대외비 자료… 과자 231개에 모두 함유
''달콤한 악마'' 트랜스지방
바삭바삭하게 하는 성분
섭취 한도 쉽게 초과돼 동맥질환 등 발병 위험

[조선일보 제공] 2일 취재팀이 들른 서울 서대문구 G대형할인마트의 과자 코너엔 140개 종류의 과자가 진열돼 있었다.

취재팀이 진열된 과자 전 종류의 봉지에 표시된 성분을 체크해보았더니 140개 중 134개에 트랜스지방 함량이 '0(제로)'라고 표시돼 있다. 새우깡(농심)·고소미(오리온)·홈런볼(해태)처럼 간식으로 인기인 스낵류들이 대부분 트랜스지방 0이다. 반면 트랜스지방이 조금이라도 함유돼 있다고 표기된 것은 립파이(롯데)·쿠크다스(크라운) 등 6종류에 불과했다.

식품을 바삭바삭하게 해주는 트랜스지방 성분은 많이 섭취할 경우 혈관을 좁게 만들어 동맥질환·뇌졸중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제가 이슈화되자 정부는 2006년 10월 트랜스지방 함유율 표기를 의무화했고, 식품·제과회사들은 앞다퉈 '트랜스지방 제로화(化)'를 선언했다. 이제 우리는 '트랜스지방 공포'에서 해방된 것일까.

그러나 안심하긴 일렀다. 함유량 0 표기가 말 그대로 트랜스지방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식품회사들과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트랜스지방 0' 표기 제품에 실제로 이 성분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 극구 비밀에 부쳐왔으나, 그 내역이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본지가 손숙미 한나라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을 통해 입수한 식약청의 대외비 자료('국내외 과자 301종류 트랜스지방 함유량')에 따르면, 조사대상 301개 중 236가지가 '트랜스지방 0'으로 표시됐으나 실제로 전혀 첨가되지 않은 제품은 5개(국산 1개, 수입산 4개)뿐이었다.

231가지는 '0' 표시에도 불구, 트랜스지방이 예외 없이 일정량 들어 있었다.

예컨대 제품 중량 30g을 기준으로 오예스고구마(해태)는 0.14g, 도도한나쵸(오리온)는 0.12g, 줄리어스(크라운)는 0.14g, 칸쵸딸기(롯데)는 0.12g, 칩포테토(농심)는 0.11g씩의 트랜스지방이 들어 있었다.

만약 초등학교 1학년 김모(6)군이 K감자스낵(H사)과 초콜릿이 발린 C과자(C사), 그리고 초콜릿 크래커 사이에 크림이 들어간 C과자(O사)를 한 봉지씩 먹고, 점심으로 햄버거 한 개를 먹었다고 하자. 이들 과자는 모두 트랜스지방 제로로 표기된 제품이지만, 실제 김군이 먹은 트랜스지방은 2.2g에 달한다. 만4~6세 성장기 아동의 하루 섭취 제한량(1.8g)을 훨씬 초과하는 양이다.

왜 이런 결과가 되는 것일까. 식약청이 정한 트랜스지방 0(제로) 표기의 기준에 비밀이 있었다. 식약청은 ①과자류의 1회 섭취 권장량(30g) 안에 들어 있는 트랜스지방 함유량이 0.14g 이하이거나 ②100g 안에 트랜스지방이 0.5g 이하 들어 있을 경우 '0'으로 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앞서 김군이 먹은 K·C과자는 1회 섭취 권장량(30g) 안에 트랜스지방이 0.14g씩 들어 있다. 그러나 과자 한 봉지 용량은 대개 70~100g 정도로, 1회 섭취 권장량인 30g보다 2~3배 많다. 따라서 과자 두 개를 한 봉지(각각 108g, 83g)씩 다 먹으면 섭취하는 트랜스지방은 약 0.9g이다.

1회 섭취 권장량 안에 트랜스지방이 0.14g 들어간 O사의 C과자 역시 한 봉지(110g)를 다 먹으면 트랜스지방 0.51g을 섭취하게 된다. 여기에 100g당 트랜스지방이 0.4g(2005년 식약청 자료) 들어간 햄버거 1개(약 200g)까지 먹으면 하루 트랜스지방 섭취 한계치를 넘어가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 섭취하는 총 칼로리의 1% 한도 내로만 트랜스지방을 먹으라"고 권고하고 있다. 성인의 경우 하루 권장 열량이 2000㎉ 내외인 만큼, 약 2g(지방 1g의 섭취열량은 약 9㎉) 정도만 섭취해야 하는 셈이다. 만1~3세 유아는 1.3g, 만4~6세는 1.8g을 넘어선 안 된다.

물론 하루 이틀 트랜스지방을 그 이상 섭취한다고 당장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권장 한도 이상으로 오래 먹을 경우 심혈관계 질환이 생길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앞의 식약청 대외비 자료에 의하면, C사의 옥수수맛 C과자와 H사의 버터맛 B쿠키처럼 1회 섭취 권장량 안에 트랜스지방이 각각 0.17g, 0.16g씩 들어가 있는데도 0으로 표기한 사례도 있었다.

식약청은 "제품마다 배합 성분이 약간씩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20% 내외의 오차를 허용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자료엔 크래커 사이에 버터크림을 넣은 C과자(C사)처럼 1회 제공량 안에 0.21g이 들어가 20% 오차 한도 범위를 벗어난 제품도 버젓이 트랜스지방 0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식약청 박혜경 영양평가과장은 "제과업체가 표기 기준을 잘 지키는지에 대해 현재 샘플 조사를 하고 있는 중"이라며 "2~3회 적발당하는 제조회사에 대해 보름~한 달간의 품목제조정지 처분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트랜스지방(trans-fat)

불포화 지방의 일종으로, 식물성 기름을 가공할 때 생기는 지방산. 식품 맛을 바삭바삭하게 하고 부드럽게 만드나, 핏속의 나쁜 콜레스테롤을 증가시켜 많이 섭취하면 심근경색·협심증 같은 동맥 질환 및 뇌졸중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캐나다·미국은 모든 가공식품에 함유량을 표기하도록 의무화하고 있고, 덴마크는 트랜스지방이 2% 이상 들어간 식품은 유통을 금지시키고 있다. 한국은 2006년 10월부터 과자 및 인스턴트 반조리 제품에 함유량 표기를 의무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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