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제공] 6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중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약했던 나라는 신라였다. 그러나 결국 신라가 7세기 후반 삼국을 통일하고 만다. 신라가 기존의 강대국인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였겠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고구려, 백제와 구별되는 신라 고유의 화랑도 정신이었다고 국사 교과서는 말한다.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루는데 원동력이 되었던 화랑도 정신은 사군이충(事君以忠)·사친이효(事親以孝)·교우이신(交友以信)·임전무퇴(臨戰無退)·살생유택(殺生有擇)의 다섯 가지 계율로 정의된다. 아직 자신의 정체성이 성립되기 이전의 나이. 성인들보다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신라의 십대들은 이런 화랑도 정신을 배우고 익혔을 것이다.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친구를 신의로 사귀고 싸움에 물러남이 없으며 살생에 있어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세속오계의 정신은 다름 아닌 신라의 기성세대들이 그들의 자식들에게 바라는 국가 이데올로기였다. 그 이데올로기를 몸으로 실천하고 죽어갔던 화랑의 이름을 기억한다. 신라의 삼국통일 전초전.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의 계백에게 죽은 열여섯의 소년 관창. 그가 바로 그 이름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지난 주말 오후 신촌의 한 극장에서 영화 <황산벌>을 보았다. 신라와 백제의 황산벌 전투를 소재로 만든 영화 <황산벌>은 요즘 유행하는 일종의 퓨전 사극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서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만으로 그려낼 수 없던 과거의 모습을 지금의 상상력으로 채운 영화 <황산벌>은 코미디를 표방한 영화답게 관객들의 웃음을 끊임없이 이끌어 내었다.
특히 신라 군사들과 백제 군사들이 벌이는 육두 문자들의 난타전은 공적인 곳에서 차마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는 ‘거시기’한 것들임이 틀림없지만 웃다가 배가 아플 정도로 근래 본 영화 장면 중에서 최고의 코미디 장면이었다.
물론 그런 ‘쌍욕’들의 대부분은 남성들 사이에서 상대를 모욕하기 위해 은밀하게 쓰이는 성적 표현이었지만 걸러지지 않은 언어들이 주는 생동감은 남녀를 막론하고 극장 안을 일순간 폭소의 한마당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를 볼수록 면면에 흐르고 있는 정서는 코미디가 아니었다. 오히려 비극적인 요소가 강했다. 그것은 영화의 소재 자체가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바로 백제, 고구려에 대한 신라의 전쟁과 같은 이름이었다.
그 전쟁의 시발점이 바로 황산벌 전투. 사서에 기록된 황산벌 전투는 오천명의 결사대를 이끄는 백제의 계백(박중훈 분)과 오만명의 군사를 이끈 신라의 김유신(정진영 분)이 각기 자국의 존폐를 놓고 대결했던 피의 현장이었다.
수적으로 우세한 신라군이었지만 목숨을 걸고 자신의 나라를 지키려는 백제군에 비하면 오히려 열세에 놓여 있었다. 특히 자신의 처자를 베고 나온 계백의 결의는 수하의 오천명 결사대를 하나로 만들었다. 신라는 백제의 관문 황산벌을 뚫어야 당군과 합쳐 백제를 멸망시킬 수 있었던 상황. 황산벌 벌판에서 맞닿은 백제와 신라군은 팽팽한 탐색전과 신경전으로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보급품을 가져오지 않은 당나라 군대에 ‘살’을 전해주고자 장수로서의 모욕감을 참아가며 버티고 있는 신라의 대장군 김유신. 그는 외세의 힘을 업고 삼국을 통일하려는 신라의 지도부와 오로지 자국에 대한 우월감으로 무장한 당군의 소정방이 모두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정치의 생리를 몸으로 체험했던 장군이었다.
계백에 비하여 전투보다는 전쟁을, 전쟁보다는 정치를 알았던 김유신은 장기판을 앞에 두고 우직한 계백과의 머리 싸움에서 역전의 실마리를 찾아낸다. 자신의 처자를 죽이고 전투에 나온 계백의 모습은 백제군의 사기를 크게 고양시켰고 신라군에게는 그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었다.
객관적인 전력상 우세했던 신라군이 백제군에게 번번이 패했던 까닭은 바로 그 부족함에 있었다. 김유신은 진영으로 돌아와 신라군의 사기를 고양시키고 전의를 불태우기 위한 고육책을 생각해 낸다. 그것이 바로 신라 화랑들의 죽음이었다.
김유신과 함께 신라군의 장군이었던 김흠춘과 김품일은 모두 자신들의 자식들을 데리고 출전했다. 그들의 자식들은 모두 김유신의 조카들이기도 했다. 김유신은 김흠춘과 김품일에게 계백의 이야기를 하며 아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간파한 김흠춘과 김품일. 각기 자신의 자식이며 화랑인 반굴과 관창을 불러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화랑도의 자세를 강조한다. 이것은 곧 나가서 죽으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사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무게중심을 두는 것은 반굴보다는 관창. 열여섯의 아직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전장에 나아간 그는 신라를 위해 홀로 적진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계백에게 잡힌다. 계백은 그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되돌려 보낸다.
관창은 다시 백제군에게 돌진하고 백제군은 그를 사로잡기 몇 번. 결국에는 관창의 목을 잘라 신라군에 보낸다. 이것을 본 신라군의 전의는 크게 불타오르고 결국 황산벌 전투는 신라군의 승리로 기록된다.
영화는 매우 도발적인 상상력으로 반굴과 관창의 백제군에 대한 단기필마 출전을 재해석한다. 당시 화랑이었던 그들은 국가관에 충실하여 자발적으로 백제군에게 달려갔던 것이 아닐 것이다. 즉 이들은 아버지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나가서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보여준다.
자식을 사지에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안 아버지들은 이를 거부하는 아들들에게 내가 죽으면 약발이 받지 않기 때문에 어린 너를 보내야만 한다고 호소한다. 또 지금 폼 나게 죽으면 그 이름이 천년을 갈 것이라고 아들들의 출전을 종용한다.
관창은 그러한 아버지를 핏빛 어린 눈으로 반항하다 결국 아버지의 뜻과 국가의 뜻에 따른다. 그리고 백제군 진영에 가서 소리를 내지른다. 자신은 신라국의 자랑스러운 화랑이며 조국을 위해 계백의 목을 자르겠노라고. 하지만 그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한 소년 전사의 모습이 아니라 죽음에 내동댕이쳐진 십대 소년의 악에 받힌 울부짖음이었다.
영화는 적진으로 뛰어든 십대 화랑들이 오로지 반굴과 관창만 있지 않았을 것임을 암시한다. 일종의 군대였던 화랑도의 소년들 역시 그 전투에 투입되었을 것이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 기록된 화랑의 이름은 반굴과 관창뿐. 추측컨대 단순히 그 둘의 희생만으로 전세가 역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그런 측면에서 기존 인식을 뒤엎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일종의 자살 특공대 같은 어린 화랑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신라군이 그 전투에서 이겼을 것이라고. 그것은 역사에 기록된 사실을 배척하는 것이었으나 우리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역사적 진실일 것이다. 사실 뒤에 가려진 역사적 진실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 <황산벌>이 여타의 단순한 코미디와 명확하게 구별되는 지점이었다.
이 영화의 상상력은 계백의 부인(김선아 분)이 남편의 칼에 죽기 전.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그 이름 때문에 죽는 것”이라고 매섭게 쏘아 부치는 장면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국가 권력을 위해 자신의 처자를 칼로 베고 나온 계백이나 자신들의 아들을 사지에 몰아넣는 신라의 장군들이나 결국은 자신들의 체제를 위해 여성이나 미성년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을 강요했던 비정한 남성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러한 남성상은 대게 우상화되고 따라야할 모범적 가치관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체제를 유지하는 근간으로 삼게 된다.
신라가 자랑하는 화랑도 정신도 뒤집어 보면 십대 남성들에게 강요했던 국가 이데올로기의 전형에 불과하다. 그 화랑도 정신의 강요에 따라 수많은 십대 소년들이 자신의 인생을 꽃 피워보기도 전에 수컷들의 피바다 잔치인 전쟁터에서 죽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쓰는 성인 남성들은 후세의 청소년들이 따라야 할 모범적인 인물로 십대 화랑들의 죽음을 미화했을 것이다. 그것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황산벌>은 그런 측면에서 국가가 강요하는 가치, 혹은 권력을 쥐고 있는 성인 남성들이 원하는 가치가 과연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평범하게 살아가는 민중들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를 웃음의 표피를 쓰고 예리하게 되묻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계백과 김유신을 제외하고 영화에서 가장 비중이 높았던 인물. 백제 오천 결사대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름도 없는 농민 ‘거시기’(이문식 분)가 지닌 상징성이나 계백 부인의 그 냉소적인 눈빛은 영화 <황산벌> 저변에 깔린 그러한 인식의 확인이었다.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김유신은 미치지 않고서 하지 못하는 것이 전쟁이라며 전장에 처음 나선 부관들을 다그친다. 자신들의 어린 조카들을 사지에 떠미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삼국통일을 이룩한 용장 김유신의 신화적 전설은 사라지고 오직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 김유신의 비정한 고뇌만이 뇌리에 남았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역사가 외면한 진실에 더욱 가까울 것이다.
살육의 전쟁이 인간 역사의 커다란 부분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의 피해와 모순을 지적하며 전쟁의 허무함을 환기시키는 내용이 상업적 영화의 소재로 쓰인다는 사실은 한국영화를 좋아하는 처지에서 반가운 일. 그것은 우리 사회가 과거의 억압에서 벗어나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그 발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주말 극장에는 데이트를 즐기러 나온 젊은 연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네들은 영화관을 나서며 재미있는 영화를 보았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네들에게 이 영화는 일견 가볍게 볼 수 있었던 단순한 코미디 영화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 역시 죄 없는 백성들이 백제군과 신라군으로 나뉘어 선혈을 낭자하며 벌이는 육박전의 화면을 아무런 느낌 없이 응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웃음 뒤에 남는 그 비릿한 무언가가 가슴 한쪽에 남은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니었을 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가판대 신문에는 이라크 파병에 관한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전쟁이란 정통성 없는 놈들이 정통성을 만들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영화 초반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신라의 김춘추와 당나라의 소정방을 향해 일갈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