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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물과는 급이 다른 끝내주는 풍미, 예부터 귀한 대접[이우석의 식사]

강경록 기자I 2024.07.19 06:00:00

동서고금 막론하고 사랑받은 민물고기

복날 복달임으로 좋은 민물장어는 민물에서 나는 생선 중 가장 고급스러운 식재료로 각광받고 있다.
[이우석 먹고놀기연구소 소장] 7월 중순, 지금이야 휴가철이겠지만 과거엔 천렵(川獵)의 계절이었다. 대대로 농경생활을 영위했던 한국인은 무더운 날씨가 시작되면 천렵을 통해 민물에 사는 물고기를 잡아 그나마 모자란 단백질을 보충했다. 대부분 바다와 먼 내륙에 살았으니 물고기(生鮮)라 해봤자 당연히 민물고기였다.

정약전이 신안 흑산도에 유배를 살며 저술했던 자산어보 이전 문헌에 등장하는 물고기는 은어 등 죄다 민물고기였다. 마찬가지 이유로 해안을 변방으로 여겨온 중국에선 민물고기 요리가 외려 고급으로 대우받고 있다. 특히 민물 갈치라 불리는 장강도어는 1마리에 1000만 원을 웃도는 가격에 팔리기도 한다. 중국에선 민물고기를 주로 튀기거나 쪄먹는데 잉어와 붕어를 특히 즐긴다.

일본에서도 민물고기에 대한 애정이 깊다. 특히 은어구이는 일본 전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꽤 높은 식재료 대접을 받는다. 아유라 해서 회, 초밥, 찜, 튀김, 구이 등으로 해먹고 밥을 지을 때 함께 넣어 은어밥을 해먹기도 한다. 국내에선 경상북도 봉화와 안동에 은어 요리가 많다.

호수가 많은 내륙 동유럽에서도 민물고기 요리가 많다. 주로 대가리와 꼬리를 제거한 필레 형태로 굽거나 튀긴다. 송어)나 메기, 역돔, 잉어를 많이 먹는다. 바다와 멀리 떨어진 독일과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베니아, 헝가리 등에서 주로 만날 수 있다.

동강나루터는 매운탕과 민물새우 튀김 등 맛있는 식사와 안줏감이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민물고기는 내륙에서 주로 즐긴다. 수도권에선 파주와 연천, 충남·북과 영남 내륙에서 물고기를 잡아 별미로 삼았다.

잉어회·가물치회 등 민물고기회가 있긴 하지만 기생충 감염의 위험 탓에 주로 탕이나 어죽을 끓인다. 바다에 비해 유기 퇴적물과 곤충이 풍부한 하천과 호수에 사는 덕에 민물고기는 살에 지방이 많다. 그덕에 매운탕을 끓이게 되면 바닷고기보다 훨씬 기름져 맛이 좋다. 흙내도 나고 하니 된장과 고추장 등 주로 진한 양념을 넣고 끓인다. 매운탕 문화가 어촌보다 농촌에서 더 발달한 이유다.

지역에 따라 재료는 다양하다. 귀한 은어와 쏘가리, 빠가사리(동자개), 메기, 산천어, 연어, 송어 등에서부터 미꾸라지, 참마자, 꺽지, 피라미 등 잡어까지 모두 재료로 쓴다. 금린어(錦鱗魚)라 불리는 쏘가리가 비싼 축에 든다.

동자개는 달고 맛이 좋지만 크기가 잘아 메기와 함께 끓인다. 보통 잡어를 쓰는 매운탕보다 비싼 값을 받는다. 참마자 역시 매운탕을 끓이면 맛이 좋은 생선이다. 충주 등 중부 내륙지방에서 많이들 먹는다.

바삭한 선광집 도리뱅뱅이
생이와 새뱅이 등 민물새우는 따로 시원한 맛이 좋아 매운탕에 빠질 수 없는 재료다. 민물에는 게도 산다. 참게는 작아서 별로 발라먹을 살은 없지만 국물을 시원하게 내주는 주역이다. 매운탕에 넣기도 하지만 아예 참게만으로도 탕을 끓인다.

고둥 종류인 다슬기도 있다. 늦봄부터 요즘 많이들 잡는다. 다슬기 역시 전국구 식재료다. 그래서 이름이 많다. 다슬기가 표준어지만 고디(경북), 대사리, 대수리(전남), 올갱이(충북), 골뱅이(강원) 등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안동에선 ‘골부리’라고도 한다. 다슬기로는 국을 주로 끓이는데 해장에 이만한 것이 없다. 된장을 풀어 한소끔 끓여내면 시원하니 속이 다 풀린다.

특유의 흙내와 잔가시 때문에 민물고기를 꺼리는 이들도 적잖은데, 김칫국을 넣고 뼈까지 녹도록 고아낸 어죽(생선국수)은 이런 문제를 해결했기에 조금 더 대중적이다. 실제 천렵처럼 어죽에는 국수와 밥을 함께 넣어 먹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작은 물고기를 튀겨내 양념을 바른 도리뱅뱅이는 내륙의 별미로 꼽힌다. 이것 말고도 시래기를 얹은 조림이나 찜, 심지어 불고기까지도 가능하다. 살집 좋은 메기나 가물치는 ‘복불고기’처럼 ◇ 것도 가능하다. 흙내를 지우기 위해 양념을 더해 철판 구이를 하면 이 또한 별미다.

가장 많이 먹는 민물고기는 아무래도 미꾸라지다. 추어탕의 재료로 쓰이는 까닭이다. 서울식, 원주식, 경상도 식 추어탕 등 각 지역별로 발달했단 이야기는 결국 한반도 전역에서 미꾸라지를 주요 단백질원으로 삼았다는 얘기다.

미꾸라지는 한의학에서도 그 영양이 좋다고 추켜세운다. 본초강목은 미꾸라지가 “비위(脾胃)를 따뜻하게 해 기운을 만들고 술을 깨게 하며 당뇨병(소갈증)으로 목이 자주 마른 데 좋다”고 썼다. 동의보감은 “속을 보하고(補中) 설사를 멎게 한다(止泄)”고 했다. 방약합편에도 “주독을 풀고 당뇨를 다스리며 위를 따뜻하게 한다”고 그 효능을 풀이했다.

경북 청도 성식당의 경북식 추어탕
맛도 좋고 영양가도 좋으니 논에 물을 대는 여름이면 전국 어디서나 추어탕을 끓였다.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시켜주는 천혜의 식자재였던 셈이다.

같은 동아시아 농경 사회인 일본에서도 즐겨 먹었다. 일본에선 미꾸리를 ‘도조’라고 하는데, 삶아서 달걀을 풀어 먹는 야나가와나베, 도조나베, 사키나베 등 다양한 미꾸리 요리가 있다. 장어처럼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구워 먹는 가바야키도 있다.

중국이라고 미꾸라지 요리가 없을까.(세계 미꾸라지 생산량 1위 국가가 중국이다.) 소설 금병매에는 주인공 서문경의 스태미나식으로 미꾸라지가 나온다. 중식에선 주로 미꾸라지 튀김이 많지만 예전에는 성주탕에 미꾸라지를 썼다.

복날 즈음엔 민물장어, 즉 뱀장어도 인기다. 뱀장어란 이름이 꺼려지니 괜히 민물장어로 고쳐 부른다. 불포화지방 기름기와 흡수율 좋은 단백질이 많은데다 맛까지 좋아 고급 보양식 취급을 받는다. 민물고기 중 구이용으론 가장 호평받는 것이 바로 뱀장어 구이다.

껍질을 벗겨내고 소금이나 양념을 발라 구워먹는다. 다른 민물고기와는 달리 흙내가 나지 않아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종류다.

뱀장어 구이에 양념을 더해 덮밥으로도 많이 먹는다. 요즘은 일본 나고야 식 히쓰마부시가 인기다. 나무통(히쓰)에 밥을 담고 바싹하게 구워 잘게 썰어낸 뱀장어를 올려먹는 요리다.

민물고기 횟감으로는 청정 수역에서 양식을 하는 송어나 향어를 주로 쓴다. 1980년대 들어 광어 양식이 성공하기 전에는 서울에서 회를 먹었다 하면 대부분 향어였으나 요즘은 파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강원도나 경기북부, 충북 지역에서는 신선한 송어나 향어를 즐길 수 있다.

종류도 다채롭고 여러가지 맛으로 만끽할 수 있다. 민물에 살지만 짠물에 사는 생물보다 풍미가 좋으니 여름철 계절 별미로 딱이다. 여름날 보양에 좋은 민물고기 맛집을 소개한다.

동강나루터는 매운탕과 민물새우 튀김 등 맛있는 식사와 안줏감이 있는 곳이다.
동강나루터는 매운탕과 민물새우 튀김 등 맛있는 식사와 안줏감이 있는 곳이다.
◇민물고기 맛집

▶동강나루터 = 참게메기매운탕으로 유명한 을지로 맛집이다. 식사도 식사지만 저녁 술손님이 들끓는다. 두툼한 메기 살점과 참게에서 우러난 시원한 국물을 함께 떠먹으면 저절로 소주를 부른다. 갓김치와 총각무, 파김치 등 반찬도 맛있어 라면에다 수제비 사리까지 챙겨 먹으면 당장 배가 불러온다. 점심 메뉴는 1인분 1만5000원으로 할인해준다. 서울 중구 을지로99.

▶오두막골식당 = 가물치가 산란기를 앞두고 요즘 살이 올랐다. 보양의 상징이다. 영어로는 뱀 대가리 고기(Snakehead fish).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는 육식 담수어종이다. 매운탕으로 유명한 연천군에서 가물치로 불고기를 하는 식당이다. 복불고기처럼 살점을 발라내 양파와 함께 칼칼한 양념에 재웠다가 불판에 볶아먹는다. 살집이 단단해 쉽사리 부서지지 않는다. 키조개 관자처럼 존득한 식감에 감칠맛도 품었다. 연천군 청산면 청창로141번길 92.

▶옥천 선광집 = 옥천군 청산면 생선국수 거리를 지키고 있는 집이다. 1962년 문을 열었다. 매운탕의 대중적 버전인 생선국수(어죽)로 유명하다. 이번에 소개할 것은 도리뱅뱅이. 꼭 맛봐야 한다. 작은 민물고기를 뱅뱅 돌려 담고 튀겨내 매콤한 양념을 얹은 음식이다. 놀라울 정도로 바삭하고 고소하다. 통째로 먹으니 영양가는 물론이요, 비린 맛도 하나 없다. 오후면 모두 팔고 영업을 끝낸다. 옥천군 청산면 지전1길 26.

▶용금옥= 설명이 필요 없는 대표적 서울식 ‘추탕’집이다. 1932년에 차렸으니 이제 90년을 넘긴 노포 중 노포다. 3대째 가업을 이어가는데 전통의 메뉴와 맛을 오롯이 지켜와 이젠 ‘서울 음식의 역사’가 되고 있다. 추탕은 통마리와 갈아 넣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소 사골과 내장, 고기 등으로 우려낸 육수에 유부, 두부, 애호박, 버섯, 양파 등을 넣고 시원하게 끓여낸 육개장 스타일. 한 세기 가깝도록 이어온 업력답게 전 연령대 고르게 두터운 마니아층을 자랑한다. 미꾸라지 부침(튀김) 등 술안주 메뉴도 다양하다. 서울 중구 다동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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