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인정하지 않는 노동이사제, 대선 앞두고 입법 가시권

최정훈 기자I 2022.01.05 07:15:00

국회 기재위, 안간조정위서 공운법 개정안 논의 착수
노동이사제 도입 골자…대선 앞두고 여야 후보 노동계 ‘의식’
유럽과 경영 환경 차이에도…노조에 경영 의사결정 영향력 커져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근로자와 경영자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노동이사제 법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동계의 표를 의식한 여야 대선후보들이 노동이사제 도입에 찬성하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관계자들이 28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표준계약서상 과로유발 조항 삭제 및 택배요금 이익금 배분 개선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전문가들은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유럽과 우리나라의 경영 환경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설익은 노동이사제 도입이 앞으로 노사관계와 기업 경영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3일 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오후 안건조정위원회를 열어 공공기관운영법(공운법) 개정안 논의에 착수했다. 이번 개정안에 담겨 있는 노동이사제는 기업의 이사회에 근로자대표를 포함해 이들로 하여금 기업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서울특별시가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이후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공공부문에 노동이사제가 도입됐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노동이사제를 민간기업으로 확산시키겠다고 밝히며 정부의 국정과제로 삼았다. 특히 지난 2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는 합의문을 의결하면서 법 개정을 목전에 뒀지만, 경영계의 반대 등으로 논의가 미뤄졌다. 그러나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들이 노동계의 표를 의식해 노동이사제 도입에 찬성하면서 법안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해 11월 22일 한국노총 지도부와의 간담회에서 “현실적으로 야당이 반대하거나 협조하지 않으면 패스트트랙으로 신속히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지난달 15일 “(노동이사제) 제도가 잘 진행되려면 노사가 동반자란 인식이 중요하다”며 “공공기관 합리화와 부실 방지에도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노동이사제는 독일 등 유럽에서 도입한 국가가 이미 많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는 계 노동계의 주장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유럽과 우리나라의 경영 환경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독일 등 유럽국가 기업의 지배구조는 이원화 모델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일원화 모델이 주류이기 때문이다.

이원화 모델은 이사회를 감독하는 감독회가 이사회와 공존한다. 독일과 동유럽 국가에서 채택한 모델로 감독회는 이사회 통제권, 이사회 이사 임명권을 갖는다. 이에 유럽의 노동이사는 이사회가 아닌 감독회에 주로 참여한다. 특히 노동이사제의 표본이라 불리는 독일에선 일정 규모 이상의 주식회사와 유한회사의 경우 업무집행은 이사회, 업무감독은 노동자 측 인사가 참여하는 감사회가 맡는다.

유럽 노동이사제 도입 현황(자료=한국노동연구원 제공)


반면 우리나라 등 대부분 나라에선 일원화 모델이 주류다. 강력한 권한을 갖는 이사회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구조다. 노동이사가 이사회에 들어가게 되면 경영의 핵심 의사결정에 혼란이 올 수 있는 데다, 경영 상 기밀의 유출 가능성도 커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또 현재 국회에 계류된 노동이사제 법안 중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안의 경우 노동이사가 상임이사로 두도록 했다. 이는 현업에 종사하지 않는 상임이사가 근로자 입장을 대변하기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는 일부 공기업의 노동이사를 상임이사로 두면 이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는 주주의 권리를 침범할 우려도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이사제는 우리나라 노사관계에 맞지 않는 제도로, 의사결정 과정에 노조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도 커질 것”이라며 “특히 청년 일자리나 기술 발전에 따른 인력 조정 등이 어려워지면서 노동의 경직성과 양극화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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