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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 비형벌 법규 비소급은 합헌"…나주부대 유족, 국가배상 좌절

한광범 기자I 2021.11.30 08:51:31

헌재, 2018년 '과거사 사건 소멸시효 적용 위헌' 결정
과거 소멸시효로 국가배상 패소한 유족들 재심 불가
재판관 4인 "위헌 맞다…과거사사건 특수성 고려해야"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비형벌 법규에 대한 위헌 결정의 효력을 소급 적용하지 않는 헌법재판소법 조항은 헌법에 부합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이번 합헌 결정으로 나주경찰부대 사건 등 2018년 소멸시효를 이유로 국가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던 과거사 사건 피해자·유족들이 국가로부터 배상받을 길은 다시 한번 가로막혔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헌법재판관 5:4의 다수 의견으로 나주경찰부대 사건 유족들이 헌법재판소법상 재심사유조항과 장래효조항에 대한 위헌심판 청구에 대해 기각 결정했다.

나주경찰부대 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이던 1950년 7월 전남 해안과 완도 일대에서 인민군으로 위장한 이른바 ‘나주부대’가 가짜 인민군 대회를 열도록 한 뒤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6년 6월 ‘민간인 수십 명이 당시 희생당했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잠정 발표했고, 이듬해 10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나주경찰부대 등에 의해 민간인들이 억울하게 학살당했다”는 취지의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이에 나주경찰부대 희생자 유족들은 2008년 3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불법행위 이후 5년의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유족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 같은 판결은 2009년 6월 확정됐다.

과거사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 사건에서 소멸시효 적용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던 와중에 헌재는 2018년 8월 과거사 사건에 적용한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나주경찰부대 희생자 유족들은 이에 2019년 7월 헌재의 위헌 결정을 근거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지난해 7월 비형벌 법규에 대한 위헌 결정의 효력을 소급 적용하지 않도록 한 헌법재판소법 등을 근거로 이를 기각했다.

이에 유족들은 해당 헌법재판소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유족 측은 “해당 헌법재판소법 조항으로 인해 헌법소원사건에서 당사자가 아니었던 유족들의 재심 대상판결 사건에서 위헌 결정의 효력이 미치지 않아 재심을 청구할 수 없게 됐다”며 “인간의 존엄과 자유, 재판 청구권, 평등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유족들이 2018년 이전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소멸시효로 패소 판결을 받아 위헌 결정을 재심 사유로 주장할 수 없게 됐다.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한 것이 오히려 불리하게 적용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법 체계의 안정성 차원에서 합헌 결정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대안으로서 ‘5·18민주화운동 특별법’ 등과 같이 재심사유에 대한 특별법 입법을 통해 2018년 위헌 결정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피해자·유족에 대해 특별재심을 허용해 구제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다수의견에 대해 이선애·이석태·이은애·김기영 헌법재판관은 소수의견을 통해 ‘해당 조항은 위헌’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 재판관들은 “2018년 이전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했던 이 사건 유족들에게 그렇지 않았던 피해자·유족보다 권리구제에 있어 합리적 이유 없이 불이익을 부여하게 되므로 평등원칙에 부합하지 않고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당 조항은 법적 안전성 이익만을 중시해 국가배상 청구의 특수성과 국민의 기본권 보장 필요성을 고려하지 않고 유족들의 재심 권리 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며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해 유족들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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