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거대한 손잡이가 먼저 눈에 띈다. 저 몸통을 잡아 밀거나 당기면 문이 열릴지도 모르겠다. 비행기에서나 볼 법한 유리창이 달린 저 문이 열리면 이내 하늘과 구름이 손에 닿을 거고. 그렇다면 여기는 비행기 안인가. 그런데 아닌가 보다. 찬찬히 눈을 돌리니 다른 윤곽이 잡힌다. ‘여행가방’이다.
작가 차민영(43)은 사람 사는 세상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한다. 구체적으론 도시고, 이념적으론 자본주의 사회다. 이 모두를 자신만의 특별한 형태인 ‘여행가방’에 가둬, 늘 주위에 있지만 아주 생소한 공간으로 꾸민다. 지하철도 들이고, 호텔 복도도 만들고, 에어컨 실외기나 가스배관이 즐비한 동네 풍경도 심는다.
‘치환된 밀도 2 신 2’(2020)란 작품명의 여행가방엔 비행기 전경을 담았다. 끝을 모르는 작가의 무한상상력이 사적인 여행가방을 통해 공적인 세계를 해체하고 다시 구축한 거다. 여행의 감상을 버리고 도시의 현실을 보란 뜻인가. 그래도 버릴 수 없는 여행가방의 꿈은 남겼다. 결국 누구나 자신의 세상을 품고 산다는. 여행가방의 크기만큼.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5길 표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언더패스(Underpass): 틈의 오브제’에서 볼 수 있다. 합성수지·폴리카보네이트·LCD 모니터. 45×74×55㎝. 작가 소장. 표갤러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