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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며칠 전에는 물건을 배달하다가 비가 내렸는데 시간이 늦어질까 봐 비를 홀딱 맞으면서 택배 상자를 날랐다”며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어떡해야 하나 벌써부터 걱정이다”고 토로했다. 한숨을 쉬는 A씨 너머로 가전제품을 실은 2.5톤(t)짜리 트럭이 단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폭염에도 추석에도 손수레…“올겨울은 춥다던데”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택배전쟁 논란의 중심에 섰던 다산 신도시. 아이들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며 택배차량의 지상 진입을 금지하고 지하주차장을 이용하도록 한 주민과 지하주차장 높이가 낮아 차량 진입이 불가능한 탓에 울며 겨자먹기로 손수레로 물량을 배송하느라 애를 먹던 택배기사들 간 갈등이 ‘배송거부’라는 극단적인 조치로 폭발했던 곳이다.
본지 보도(차 없는 아파트…다산신도시는 택배와의 전쟁중) 이후 여론이 들끓었고 국토교통부와 남양주시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도 택배전쟁은 진행 중이다.
다산신도시 내 아파트 단지들은 여전히 단지 택배차량 진입을 금지하고 있다. 택배 기사들은 올여름 역대 최악의 불볕더위에도, 택배물량이 폭증한 추석명절에도 손수레를 이용해 물건을 배송해야 했다.
저상차 교체, 실버 택배 도입 등의 대안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택배업체와 주민들간 협의마저 제자리걸음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 택배기사는 “다산 신도시 택배 논란 이후 뭔가 바뀔 것이라 기대했지만 결국 바뀐 건 전혀 없었다”며 “지금도 손수레로 하나하나 나르고 있다. 택배물량이 평소보다 1.5배 가까이 늘었던 추석에도 일일이 손수레에 실어 배송하느라 하루에만 열번 넘게 단지를 오가기도 했다 ”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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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신도시뿐 아니라 택배차량의 지상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다른 지역의 ‘차 없는 아파트’도 6개월 전과 별반 상황이 달라진 게 없다.
경기도 구리 갈매지구에서 일하는 택배 기사 B씨는 “논란 이후 반년이 흘렀지만 갈매 지구 전체에 지상출입이 허용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며 “보름 전에도 너무 힘이 들어서 관리사무소에 단지 내 차량 진입 허용을 요구하니 주민들이 반대해서 안된다는 답만 들었다”고 전했다.
같은 갈등을 겪었던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아파트는 올해 3월 입주민들이 택배회사에 차량을 개조해 차고를 낮춰 지하주차장을 이용하거나 지상에서 수레로 배송하라고 요구하자 택배회사가 ‘택배 불가 지역’으로 지정하고 배송을 거부해 마찰을 빚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다산 신도시뿐 아니라 지상공원형으로 설계돼 단지 내 차량 진입이 원칙적으로 금지된 아파트 단지들이 속속 입주를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택배전쟁이 진화되기는커녕 더 크게 확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차없는 아파트 택배 논란이 불거지자 국토교통부는 지상공원형 아파트 단지는 지하주차장 높이를 기존 2.3m에서 2.7m로 상향하도록 관련 규정을 변경했다. 그러나 공사에 들어간 단지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탓에 이미 설계가 끝난 아파트들은 기존 2.3m 규정대로 지어져 평균 차고가 2.5m인 택배차량들은 지하주차장 진입이 불가능하다.
◇실버택배 무산 이후 대안마련 수개월째 허송세월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나 택배회사 모두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당초 정부와 택배업계는 단지 입구에 택배 보관소를 세우고 단지내 이동은 단지 및 주변지역 노인들을 채용해 맡기는 실버택배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일부 비용을 정부와 지자체가 부담하는데 따른 비난여론을 이유로 철회한 상태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지자체와 정부가 고령인력 채용시 지원하는 보조금이 마치 택배비용을 대신 부담하는 것처럼 알려진 탓에 무산됐다”며 “현재로서는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013년 실버택배를 도입한 CJ대한통운은 전국 170여 개 거점에 1400여명이 근무 중이다.
또다른 택배업체 관계자는 “출입시간을 정하는 방안, 지상배송을 허용하는 대신 속도 제한을 두는 방안 등 다양한 대안을 놓고 주민협의체와 협의 중”이라면서도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 단지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어 결론이 언제 날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