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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도주하면 범죄수익 '꿀꺽'…추징금 집행률 1%대 그쳐

노희준 기자I 2018.09.18 06:00:00

유병언 전 회장 사망으로 몰수 벽에 부딪혀
뇌물 수수 혐의 前 경찰관도 공소시효 만료로 몰수 불가
2011~2015년 추징금 집행률 1%도 못미쳐
무죄추정원칙·재산권 침탈 논란 넘어야
독립몰수 선고·집행 절차 논의 필요 지적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2014년 7월. 세월호 참사 후폭풍이 거세던 그해 여름은 검찰에 있어 시련의 시기였다. 고(故)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전남 순천의 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자 그의 행방을 쫓던 검찰은 당혹감에 빠졌다.

유 회장 검거 실패로 1000억원대 유씨 일가 재산을 쫓던 검찰의 몰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추징보전 명령 청구까지 받아냈던 검찰로서는 허탈할 수 밖에 없었다. 현 몰수 제도는 유죄 판결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망자는 재판을 받을 수 없으니 몰수 또한 불가능하다.

근거는 형법 41조와 49조다. 형법 41조는 형의 종류로 몰수를 규정하고 있다. 형법 49조는 ‘몰수는 타형에 부가해 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유죄가 선고되지 않으면 아무리 재산박탈의 필요성이 크더라도 재산만 빼앗을 수 없다는 얘기다.

검찰이 공소제기가 불가능한 경우도 요건만 충족하면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는 ‘독립몰수’ 제도 도입을 추진하기로 한 계기가 세월호 사건 때 드러난 현행 몰수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물론 형법 41조는 단서 조항에서 ‘행위자에게 유죄의 재판을 아니할 때에도 몰수의 요건이 있는 때에는 몰수만을 선고할 수 있다’고 예외규정을 두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주된 범죄행위에 대해 공소는 제기돼 있어야 몰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사실상 사문화한지 오래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 범죄자 사망·도피로 기소 못 하면 몰수도 불가능

이 부분에서 몰수·추징제도의 사각지대가 생긴다. 범죄를 저질러 벌어들인 게 확실한 재산도 범인이 사망, 도주, 공소시효 만료, 심신상실·형사미성년자 등으로 인해 기소할 수 없거나 기소를 유예하는 경우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단이 없다. “사기를 치고 뇌물을 받아도 해외로 도주하면 끝”이라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사법 현실이 존재하는 이유다.

유흥업소 업주로부터 수사청탁 대가로 두 차례에 걸쳐 금괴 6개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던 전직 경찰관 A씨 사례도 현 몰수 제도의 맹점이 노출된 경우다. 그는 1심에서 금괴 6개의 뇌물수수 혐의가 인정돼 금괴 5개 몰수와 추징금 4340만원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금괴 1개에 대한 수수혐의가 인정되지 않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액수 1억원 미만일 때 적용하는 공소시효 7년이 지나 면소처분(공소시효 완성 등 소송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소송을 종결시키는 재판)을 받았다.

설사 금괴 5개를 수수했다고 하더라도 그 액수가 1억원에 미치지 못해 뇌물액수가 1억원 이상일 때 적용하는 공소시효 10년이 아니라 뇌물가객 1억원 미만일 때 적용하는 공소시효 7년이 적용된 탓이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인 이 사건은 항소심 판단이 그대로 확정되면 A씨는 합법적(?)으로 금괴를 소유할 수 있게 된다. 공소시효 만료로 기소가 불가능한 탓이다.

전직 경찰관 A씨는 이데일리와 통화에서 “금괴 5개를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 2심에서 판단을 한 건 아니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법 공보관은 해당 판결과 관련 “2심은 A씨가 금괴를 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몇 개를 받았는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된) 1개에 대해 혐의 입증이 안 됐다는 판단만 한 것”이라며 “금괴 5개를 받지 않았다는 판단을 한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단군이래 최대 사기사건으로 불리는 조희팔 사건과 같이 주범이 사망했어도 공범이 있는 경우 공범을 통한 몰수 추징이 가능하다”며 “하지만 단독 범행의 경우 이런 우회로마저 차단된다”고 설명했다.

마약과 약물거래 범죄처럼 계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사건도 몰수·추징제도의 공백이 드러난다. 빅뱅의 멤버 최승현(예명 탑)이나 허희수 SPC 전 부사장이 대마초 흡연혐의로 추징당한 금액이 각각 1만2000원, 3000원에 그친 게 대표적 사례다.

법조계 관계자는 “수사당국은 실무상 어느 한 시점의 약물 양도나 수입을 근거로 기소를 할 수밖에 없다”며 “기소한 범위에서만 몰수 대상이 인정되기 때문에 범죄 규모와 몰수범위 간 차이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제도적 허점 탓에 몰수 추징 실적은 저조하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1~2015년 5년간 범죄에 대한 추징금 집행률은 1%(0.21~0.57%)도 못 미친다. 정부의 집행 의지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기는 하다.

◇ 무죄추정원칙 위배·재산권 침해 지적도

독립몰수 제도 도입의 걸림돌은 무죄추정의 원칙 위배 및 재산권 침해 논란이다.

유죄 확정없이 검찰이 주관적인 판단만으로 몰수를 추진하면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박미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독립몰수는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사람에게 재산을 몰수한다는 점에서 법리상 큰 공감대는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혜경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독립몰수는 범죄를 입증하지 못한 채 몰수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라며 “피의자 신병을 확보했다면 충분히 공소제기가 가능한 경우 등으로 한정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어떤 법적 절차를 통해 독립몰수를 선고하고 집행할 것인지는 논의가 미진한 상황이다. 검찰이 일방적으로 몰수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게 피의자 부재시 서면심리로 대체해 법원이 판단하게 하는 방안 정도가 제기된다.

조균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립몰수가 일반 형사재판 절차와 다를 수는 있지만 형사재판 없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해당 재산이 범죄수익이라는 것을 검사가 입증하고 판사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훈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전면적으로 도입하기보다는 배임, 뇌물 범죄 등 액수가 큰 특정경제에 관한 범죄 등에 단계적으로 적용해보는 방안을 검토해 볼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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