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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 코리아]②빚 탕감 10명중 2명 또 연체…'물고기 잡는 법' 알려줘라

문승관 기자I 2017.06.19 06:00:00

퍼주기식 붕어빵 ''서민금융정책''
새정권마다 선심성 정책 반복
박근혜 정부 4년 10만명 감면
연체율 6.9→18.2% 3배 늘어
4대 서민금융상품 효과 미미
文 공약도 ''도덕적 해이'' 우려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 필요"

[이데일리 권소현 문승관 노희준 전상희 기자]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둔 황 모(34)씨는 실직 4개월 만에 한계상황에 직면했다. 당장 월세 낼 돈도 빠듯한 상황에서 갑자기 아이가 병까지 걸린 탓이다. 생활비와 아이 치료비로 500만원이 넘는 목돈이 필요했지만 돈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황 씨는 정부가 저소득 서민을 상대로 내놓은 햇살론 같은 정책 서민금융 상품을 이용하려고 저축은행 등 금융사 몇 곳을 두드렸지만 모두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이어서 소득이 없는 황씨는 자격이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대부업체 몇 곳에 전화를 돌린 뒤에야 연 30%에 육박하는 고금리를 조건으로 겨우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신용등급 6등급 이하의 저소득·저신용자가 주로 찾는 서민금융 시장에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신용등급이 비교적 양호하고 빚이 없는 사람은 정부가 선보인 햇살론 같은 저금리 정책 상품을 이용할 수 있지만 황씨처럼 일시적인 실직 상태이거나 신용등급이 9~10등급에 속한 사람은 지원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정책상품은 물론 민간 시장에서도 외면받기 일쑤다.

미소금융·새희망홀씨·햇살론·바꿔드림 등 서민을 위한 정책금융상품이 있지만 실제 거절당하는 사례도 상당하다. 생계는 어렵고 고금리 대출까지 있어 허덕거리다가 정책금융에 손을 내밀어도 햇살을 쪼일 수 있는 대상은 따로 있는 것이다. 제도권 마지막 보루인 대부업체에서 탈락하면 사실상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저신용자 돈 구하기 ‘하늘의 별 따기’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국민의 세금과 각종 기금을 이용해 빚을 탕감하거나 감면하는 정책을 써왔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도 2013년 국민행복기금을 출범시켜 4년간 58만 1000여명에게 1인당 600만원, 약 6조 4165억원(원금 기준)의 채무를 감면해줬다.

하지만 이 가운데 지난해 말 기준 10만 6000명(18.2%)은 연체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오히려 연체율만 2014년(6.9%)보다 세 배가량 늘었다. 저신용·저소득층들은 매년 제도권 금융사에서 지속적으로 밀려나면서 이른바 ‘빚의 늪’에서 헤어나올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지난해 조사한 결과 신용등급 9~10등급자의 대출거절률은 72.7%에 달했다.

이에 따라 신용등급 최하위인 9~10등급 한계가계와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양산되는 구조를 차단할 방안에 대해 범정부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 정책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저소득·저신용자는 민간 서민금융 시장에서도 돈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 대부업체 대출 문턱까지 점점 올라가고 있다. 대부업금융협회에 따르면 그동안 최고금리가 내려가면서 저신용자 신용대출을 주로 담당하는 76개 대부업체의 평균 대출 승인율은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0%대로 내려앉았다.

이들 업체의 대출 승인율은 2014년 12월 22.6%, 2015년 6월 20.4%, 12월 21.1%로 20%대 수준을 유지해오다 지난해 1월부터 10%대로 하락했다. 대출 신청자 10명 중 1명만 대출 승인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 대출절벽으로 내몰리는 이들이 더 늘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미국 경제가 긴축으로 돌아서면서 금리인상을 이어가고 있고 최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완화적인 통화정책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시그널을 주기도 했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은 늘고 한계 차주도 증가하게 된다.

◇정권마다 “더 싸게 더 많이 빌려주겠다”

“더 싸게 더 많이 빌려주겠다.” 이제까지 복잡했던 모든 서민금융정책은 이 한 줄로 요약된다. 정부는 서민들에게 그간 더 낮은 금리에 더 많은 한도로 돈을 빌려주기 위해 대출 문턱을 계속 낮춰왔다. 서민금융 정책의 초점이 ‘누구나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어야 한다’는 ‘금융접근성 확대’에 맞춰진 결과다. 하지만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4대 서민금융상품등을 포함한 정책서민금융상품은 2012년 3조 6595억원에서 2016년 5조 1566억원으로 2014년을 제외하고 꾸준히 늘었다. 정부는 올해도 정책서민자금 공급 여력을 지난해 5조 7000억원에서 최대 7조원까지 확충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이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바꿔드림론’의 대위변제율은 2012년 9.1%에서 216년 28.1%까지 3배 넘게 급등했다. 대위변제율이란 금융회사가 떼인 대출을 정부가 대신 갚아준 비율이다. 일반 대출상품의 연체율과 같은 의미다.

문재인 정부가 장기연체자 채무조정과 관련해 구체적 이행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어서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민 취약계층에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준다는 정책 취지와 달리 도덕적 해이와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논란 등의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선심성 공약으로 빚 탕감 정책을 반복해온 선례를 들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빚 탕감 정책이 있었지만 효과가 없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며 “결국 정부가 언젠간 갚아주겠지라는 마음으로 도덕적 해이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기간과 금액을 기준으로 한 전액 탕감보다는 상환 능력과 의지, 소득 현황 등을 복합적으로 살펴 조건부 조정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는 “채무 전액 탕감은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인식 자체를 흔들 수 있다”며 “취약계층은 사회보장시스템으로 보호하고 상환 능력과 의지가 있는 대상을 가리는 등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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