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회 SRE에서 조선업은 173명 가운데 35.8%에 이르는 62명(중복응답 가능)에게서 ‘최근 6개월 동안 업황이 나빠진 산업’으로 꼽혔다. 지난 20회에 이어 한 번 더 정유의 뒤를 이어 2위에 자리했다. 지난해 상반기인 19회 SRE에서는 당시 109명 중 3.7%(4명)만 조선의 업황을 우려했지만 하반기 어닝쇼크 이후 시장을 보는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번 SRE에서 71명의 크레디트 애널리스트 중 35.2%(25명)와 102명의 매니저와 브로커 등 비 크레디트 애널리스트 36.3%(37명)가 조선의 업황 둔화를 우려했다. 더 큰 문제는 업황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거의 없다는 점이다. 업황 악화 1위를 차지한 정유조차 설문자의 21.4%(37명)가 ‘향후 1년 내 개선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지만 조선이 나아질 것이라 답한 이들은 단 4.0%(7명)에 불과했다.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지난해 1분기 삼성중공업이 대규모 어닝쇼크를 기록한 데 이어 3분기에는 현대중공업이 파문을 일으켰다. 현대중공업은 3분기 1조9346억원(별도기준)에 이르는 적자를 기록하며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어닝쇼크에서 비껴간 대우조선해양 역시 2010년 8.38%대이던 영업이익률이 2012년부터 3%대로 내려오며 부진에 시달렸다. 영업현금 대비 과도한 재무부담을 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해양플랜트 저가 수주와 초도프로젝트 공기 지연으로 수익성 저하가 심화됐다. 그나마 버티고 있던 ‘빅3’의 수익성 저하에 조선업종을 둘러싼 우려는 짙어졌다.
선박대금 결제 방식 역시 조선사의 현금 흐름을 제약하며 재무구조를 악화시켰다. 계약이나 탑재시기가 아닌 인도 시기 절반 이상의 대금을 지급하는 헤비테일(heavy tail) 방식에 조선사는 순차입금 증가라는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해양플랜트는 선수율이 낮고 건조기간이 긴 만큼 헤비테일 방식이 주를 이룬다.
가뜩이나 신규 수주가 부족한 가운데 헤비테일이 심화되며 조선사들은 자금확보에 허덕이게 됐다.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차입금은 급증했다.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5개 조선사의 총 차입금은 지난 2010년 9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22조원으로 급증하게 됐다.
한 자문위원은 “STX조선해양이나 한진중공업이 이미 시장 관심권에서 멀어진 상태에서 설마했던 빅3까지 나가떨어진 것”이라며 “과거에 얼마를 벌었는지 시계열적 분석은 전혀 필요없을 정도로 재무구조가 엉망이 됐다”고 지적했다.
해양플랜트 비중이 높은 국내 조선사의 구조상, 유가의 구조적인 하락이 해결돼야 발주도 증가한다. 그러나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가 지난 6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가가 앞으로 3개월간 배럴당 40달러 선에서 거래되다 내년 상반기께 65달러 선으로 오를 것으로 보인다. 결국 셰일가스나 타이틀 오일, 심해 유전 등에 대한 개발 욕구가 줄어들며 해양플랜트 투자도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국면이다. 이에 따라 해양플랜트 대신 그나마 수요가 있는 상선부문에서 새로운 경쟁이 나타나고 있다.
NICE신용평가는 “해양플랜트 발주가 위축되면 상선부문으로 수주 경쟁이 심화된다”며 “전방 해운업의 높은 경쟁강도를 고려할 때 선박가격의 구조적 상승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가격과 국가 정책을 앞세운 중국 조선사의 성장으로 국내 조선사의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있다. 경쟁에서 한 발 먼 초대형 컨테이너선이나 LNG선 발주에 초점을 맞추는 곳도 있지만 비중 자체가 크지 않아 한계가 있다.
이에 국내 빅3 조선사는 최근 해양플랜트 제작이 아닌 EPCI(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 and Installation) 전 과정으로 눈을 넓히고 있지만 설계 역량이 미숙하고 사업 경험 역시 많지 않다.
업황 자체가 좋지 않으니 21회 SRE에서 조선업종 개별 종목들도 등급 부적격 설문에 이름을 올렸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각각 12.7%(20표), 8.1%(14표)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등급 강등 이후 시장의 관심권에서조차 사라진 대우조선해양 역시 5.8%(10표)로 나타났다.
4월 현재 삼성중공업의 신용등급은 ‘AA’이지만 등급 전망은 ‘안정적’과 ‘부정적’으로 엇갈린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12월 A+로 강등되며 시장에 충격을 줬고, 한신평은 올해 정기평가에서 기어이 A로 등급을 낮췄다. 현대중공업 역시 3사로부터 ‘AA (부정적)’ 평가를 받으며 등급 하락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당시 한국기업평가와 NICE신용평가는 매출액에서 상각전 영업이익(EBITDA)이 차지하는 비중이 5% 미만을 지속할 경우 등급 하향 압박이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매출액 대비 EBITDA은 -5% 수준이다.
한 자문위원은 “업황 부진을 반영했을 때 아예 현재 수준에서 한 노치 아래 등급으로 생각해 두는 게 속 편할 것”이라며 “유가가 배럴 당 100달러 수준으로 올라오지 않는 한, 재무 개선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라고 말했다.
한신평은 “개별 업체의 경쟁력이나 재무융통성으로 차별화가 나타날 수 있겠지만 조선업계 전반의 비우호적인 외생 요인이나 제한적인 실적 개선 가능성을 감안했을 때, 여전히 어려운 한 해를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21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s by Edaily)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21회 SRE는 2015년 5월1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문의: sto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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