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왜 안창살 메뉴에 국내산이라고만 써 놨죠? 국내산은 한우, 육우, 젖소 이렇게 세 가지 품종으로 나뉩니다. 고기의 '국적'뿐 아니라, 품종까지 정확히 표시하셔야죠."(감시반)
"거기까지는 몰랐습니다. 국내산이랑 수입산, 이렇게만 표시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식당 주인)
지난 19일 오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과 전국한우협회, 소비자단체로 구성된 원산지 표시 합동감시반과 함께 찾은 서울 목동의 한 쇠고기 전문 식당. 감시반과 식당 주인 사이 오간 대화에선 '원산지 표기법'과 관련, 혼란스러운 현장 분위기를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다.
"수입산은 그냥 '미국산', '호주산' 등으로 표시하면 되지만, 국내산은 품종까지 정확하게 써주세요. 여기 메뉴판에 있는 공기밥에도 쌀 원산지가 표시가 안 돼 있네요. 국내산 쌀이다, 중국산 쌀이다, 이렇게 구분해 써 놔야죠. 표시가 안 돼 있을 경우엔 5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됩니다."(감시반)
"아…, 그것도 몰랐는데, 메뉴판을 아예 다시 만들어야겠네요."(식당 주인)
◆'법 따라잡기'에 숨가쁜 일선 음식점
이 식당은 165㎡ 규모로, 당장 22일부터 새로운 원산지 표시제를 적용받지만 3일 전까지도 표시 방법이나 대상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이 식당의 사장 박모씨는 "식품의약품안전청 홈페이지나 신문을 통해 얻은 정보들로 대충 메뉴에 표시해 봤는데, 사실 아직까지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감시반과 함께 찾은 4개 식당 중 제대로 원산지 표시를 해 놓은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보건복지부의 식품위생법 개정안에 따라 100㎡ 이상 음식점에서 쇠고기와 쌀의 원산지를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하는 원산지 표시제가 22일부터 도입됐다. 기존엔 300㎡ 이상의 음식점들만 원산지 표시를 해왔던 것에 비하면, 적용 대상이 대폭 늘어난 것이다. 이어 7월 초부터는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산물품질관리법에 따라 원산지 표시제 적용 대상이 100㎡ 이상에서 규모에 상관없이 쇠고기와 쌀 조리 음식을 판매하는 전 음식점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음식점 업주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건복지가족부와 함께 단속 계획을 수립하고, 단속 정보를 공유해 이중 단속의 피해가 없도록 할 계획"이라며 "홍보계도 기간이 짧아 일선 음식점들이 내용을 잘 모를 수도 있지만, 7월 초부터 일반 소비자들의 제보가 들어오는 경우엔 단속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눈 크게 뜨고 메뉴 보는 법
특히 초미의 관심사인 '쇠고기' 조리음식의 경우, 소비자들은 눈을 보다 '크게' 뜨고 메뉴를 들여다봐야 한다. 표시 내용이 복잡하고, 자칫 설명만 읽으면 이해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산의 경우 한우, 육우, 젖소 등 쇠고기의 '품종'까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 중 해외에서 소를 들여와 6개월 이상 사육한 '육우'의 경우엔 어떤 국가에서 소가 태어났는지도 함께 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던 소가 국내 농장에 들어와 반년 정도 사육된 뒤 도축돼 등심 부위가 서울의 한 음식점에 들어왔다면 '등심 국내산(육우, 미국산)'이라고 써야 한다.
탕의 경우엔, 육수를 우려낸 뼈의 종류와 탕에 들어가는 고기 종류까지 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우 사골뼈로 국물을 내고, 호주산 갈비를 고기로 사용했다면 '갈비탕(국내산 한우뼈, 호주산 쇠고기 섞음)'으로 표시해야 한다. 공기밥, 김밥, 비빔밥 등 '쌀'을 사용하는 경우엔 쌀의 원산지도 표시해줘야 한다. 단, 죽, 식혜, 떡 등은 쌀을 원료로 하지만 표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음식점들도 분주해졌다. 기존엔 각 식당들의 규모가 300㎡를 넘지 않아 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던 백화점 식당가들은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원산지 표시를 아예 앞당겨 해오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1일부터 전 식당가를 대상으로 원산지표시제를 실시하고, 품목도 쇠고기, 쌀, 돼지고기, 닭고기, 배추, 생선까지로 확대했다.
메뉴판에 원산지와 함께 거래명세표, 도축검사증명서, 수입면장 등 서류를 비치했다. 맥도날드, 롯데리아도 5월부터 출입문에 쇠고기 원산지와 관련 서류를 놓아 뒀다.
문제는 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소형 식당들. 새롭게 적용을 받는 대부분의 식당들은 정확한 표시 방법조차 제대로 모르는 실정이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한우·삼겹살 집을 운영하고 있는 강민섭(34)씨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쇠고기를 어떻게 표시해서 팔아야 하는지 몰라 농림부에 문의했다"며 "작은 식당들의 경우, 사정이 다 비슷비슷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