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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는 승계절차가 예년보다 빨라진다. 기존에는 승계절차 개시 시점에 대한 규정이 명문화 돼 있지 않아 금융사 별 절차가 촉박하게 진행되기도 해 CEO 선임 때마다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하지만 올해부터 금융당국의 제안으로 시행하는 ‘은행권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따라 모든 은행권(KB·신한·하나·우리·NH·BNK·DGB·JB 8개 금융지주와 국책은행을 제외한 16개 은행)은 CEO 임기 만료 3개월 전부터 경영승계절차를 시작해야 한다. 이에 따라 승계절차는 오는 9월부터 본격화할 예정이다.
5대 은행장 가운데 1년 연임에 성공한 이재근 국민은행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초임인 만큼 연임에 대한 가능성이 열려 있으나 변수는 ‘금융사고’다. 금융당국의 내부통제 제재가 세지는 상황에서 금융사고에 대해선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다.
국민은행은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최대 판매사로 1분기 실적이 좋지 못했고, 올 상반기 100억원 이상 배임 사고가 3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반기에는 홍콩 H지수 ELS 손실계좌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영업실적도 1분기 대비 크게 개선될 것으로 사측은 내다보고 있다. 또한 전임자였던 허인 전 행장이 3연임하며 회사를 4년간 이끈 전례가 있어 이 행장의 3연임을 두고 여러 해석이 대두된다.
조병규 우리은행장도 금융사고와 실적이 부담이다. 2022년 700억원대 대형 횡령사고 발생 이후 그룹 차원에서 내부통제를 수차례 강화했지만 조 행장 임기 중 또 100억원대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조 행장은 올해 시중은행 중 당기순이익 1위를 선언한 만큼 실적 개선도 큰 과제로 남아있다. 당시 조 행장의 발언은 케이뱅크가 올해 상장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시 케이뱅크의 2대 주주인 우리은행이 일회성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다분히 깔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는 우리은행이 순수 영업으로의 1위 달성이 아닌 ‘빛바랜 1위’가 될 것이란 시각으로도 이어진다.
이석용 농협은행장 역시 최근 총 160억원에 달하는 부당대출, 배임 사고가 연이어 발생해 약점으로 꼽힌다. 또한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이 임기를 시작한 만큼 농협 금융계열사 인사에 대대적인 변화가 이뤄질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반면 정상혁 신한은행장과 이승열 하나은행장은 연임 가능성이 비교적 크게 점쳐진다. 고객중심 경영전략을 추진해 온 정 행장은 올해 1분기 실적에서 신한은행을 다시 리딩뱅크로 만들었다. 특히 정 행장은 ‘금융판 중대재해법’인 책무구조도 마련에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나서는 등 내부통제 강화에도 선제적인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승열 행장은 지난 3월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와 함께 사내이사에 선임되며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과 ‘사내이사 3톱 체제’를 구축, 현 체제에서 무게감을 더하며 중용될 것이라는 평가다.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부터 CEO 승계 과정에서 후보군의 중요 사항의 문서화를 비롯해 CEO 평가 요건을 공개하게 됨에 따라 금융사고 등 내부통제에 대한 평가 잣대는 더욱 엄격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