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스테이트' 뉴욕마저…심상찮은 바이든 심판론[미국은 지금]

김정남 기자I 2022.11.06 10:33:09

민주당 텃밭 뉴욕주지사 선거 예상밖 박빙
'트럼프 측근' 젤딘, 28년 만에 균열 일으켜
'비상' 바이든·힐러리·해리스, 뉴욕 총출동
"공화당 기우는 중간선거 판세 방증" 평가
대도시 범죄 급증·바이든플레이션 충격파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지난 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맨해튼에 있는 명문 여성 사립대인 버나드 칼리지는 거물 정치인들의 등장으로 떠들썩했다. 선거 유세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대선 후보가 이번 중간선거에 나선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 후보(현 주지사)를 지원 방문했기 때문이다. 상원의장을 당연직으로 겸하는 민주당 소속 현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까지 합류했다.

유세 주제는 ‘뉴욕 여성이여 투표하라’(new york women vote). 엄청난 환호성과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등장한 힐러리는 잠시 놀랍다는 표정을 지은 후 두 팔을 벌려 화답했다. CNN은 “힐러리가 직접 지지 유세 무대에 오른 것은 매우 낯선 장면”이라고 했다. 힐러리는 “공화당은 낙태권에 대한 (역사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한다”며 “그들은 낙태권을 폐지하기 위해 50년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선거 의제에서 경제에 밀린 낙태 이슈를 재점화해 여성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다.

(사진 왼쪽부터)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캐시 호컬 민주당 뉴욕주지사 후보(현 주지사),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맨해튼에 있는 버나드 컬리지에서 중간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AFP 제공)


◇바이든·힐러리·해리스, 뉴욕 총출동

정가에서는 떠들썩했던 이번 유세전이 역설적으로 민주당의 위기를 방증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손쉽게 이길 것으로 예상했던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이 공화당에 바짝 쫓기고 있는 탓이다. 2020년 대선 당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현 대통령)는 뉴욕주에서 60.9%를 득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득표율은 37.7%였다. 무려 23.2%포인트 차이다. 1994년 조지 파타키 이후 공화당 소속 뉴욕주지사는 28년간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선거예측기관 파이브서티에이트(538)가 각 여론조사를 종합한 지지율을 보면, 5일 현재 호컬 후보는 51.0%로 리 젤딘 공화당 후보(43.6%)에 7.4%포인트 앞서 있다. 지난 7월만 해도 20%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났으나, 격차가 확 줄었다. 심지어 트라팔가 그룹이 뉴욕주민 1198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7~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호컬 후보가 47.6%로 젤딘 후보(48.4%)에 뒤졌다. 민주당 색이 짙은 ‘블루 스테이트’(blue state) 뉴욕주가 갑자기 이번 선거의 최대 관심 지역으로 떠오른 이유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공화당 성향이 강한 뉴욕주 북부보다 민주당 성향이 강한 맨해튼 등 뉴욕시에서) 민주당은 투표율을 끌어올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호컬 후보를 돕기 위해 당내에서 가장 소중한 인사들을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뉴욕 정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힐러리와 해리스가 동시에 나온 것은 민주당이 당 차원에서 뉴욕주 선거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까지 오는 6일 뉴욕주 유세전에 함께 할 예정이다.

더 놀라운 것은 젤딘 후보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점이다. 젤딘 후보는 지난 대선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 선언을 가장 먼저 한 인사로 알려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욕주에서 인기가 상대적으로 더 떨어진다는 점에서 선거전에 마이너스(-)일 수 있는데도, 젤딘 후보는 약진하고 있는 것이다. 젤딘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지더라도 정치적인 ‘무게감’은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리 젤딘 공화당 뉴욕주지사 후보가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AFP 제공)


◇‘젤딘 돌풍’ 28년 만에 균열 일으켰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텃밭에서 고전하는 기현상은 왜 벌어지고 있을까. 무엇보다 팬데믹 이후 급증하고 있는 뉴욕시의 범죄 문제가 꼽힌다. 올해 뉴욕시의 강도 발생 건수가 33% 폭증하는 등 안전 문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유권자들의 인식이 퍼지면서, 젤딘 후보가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다. 젤딘 후보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당선 첫날 행정명령을 발동해 뉴욕주에 범죄 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거 초반 낙태 문제 등을 내세웠던 호컬 후보는 최근 총기 규제 등 안전 이슈까지 강화하고 있다. 김동석 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민주당은 비상이 걸린 상태”라며 “호컬 후보도 범죄 안전 문제를 우선시하는 쪽으로 선거 전략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충격파 역시 뉴욕주를 덮쳤다. 이른바 ‘바이든플레이션’(biden+inflation)이다. 요즘 맨해튼에서는 방이 없는 원룸형 스튜디오의 월세는 웬만하면 4000달러(약 560만원)가 넘는다. 방 하나짜리 아파트 월세는 6000달러(약 850만원) 안팎은 줘야 한다. 말 그대로 살인적인 물가다. 이 역시 현직인 호컬 후보에게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주뿐만 아니다. 대도시 시카고가 있는 또 다른 민주당 텃밭인 일리노이주는 상황이 비슷하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과 공화당의 득표율은 각각 57.5%, 40.6%를 기록했다. 민주당 소속의 J.B 프리츠커 현 주지사가 여전히 유리해 보이지만, 대런 베일리 공화당 후보를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예상도 만만치 않다.

김동석 대표는 “바이든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진 전국적인 민주당 역풍 현상이 각 선거 지역 곳곳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심판론’이 심상치 않다는 의미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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