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원조 숯불 돼지갈비 통술집’의 주인 할머니 고수덕(84)씨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인생의 칠할을 보낸 이 식당 운영을 그만두기로 결심했지만, 아직은 실감나지 않는 눈치였다.
폐업을 나흘 앞둔 30일 오후, 고 씨는 여느 때처럼 식당에서 반찬을 준비하고 손님들이 떠난 테이블을 닦았다. 이날 점심 반찬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등어무조림과 오뎅볶음, 청포묵, 계란말이, 깍두기. 7000원짜리 된장·김치찌개를 시키면 늘 그렇듯 푸짐한 반찬이 먼저 나온다. 점심시간엔 반찬 젓가락질하느라 정작 주문한 찌개는 다 먹지 못하는 때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퍼 줘도 남는 게 있을까’라는 의구심은 불행히도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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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양 출신인 고 씨의 손맛과 인심이 입소문을 타면서 식당은 문전성시를 이룰 때가 많았다. 10평 남짓한 가게에서 시작해 옆 가게까지 확장한 게 2000년대 초반이다. 친정 아버지, 남편, 친오빠와 올케, 딸까지 온 식구가 손을 보태면서 식당을 함께 꾸려 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터진 지난해 봄부터 매출이 뚝 떨어졌다. 고 씨는 “하루에 250만원은 팔아야 10년, 20년 같이 한 직원들 월급도 주고 세금도 내고 하는데 모자랐던 거야. 2년 동안 적자를 봤는데 아들이 말을 안 해줘서 몰랐다”며 “‘나아지겠지’ 생각했는데 저녁 장사를 제대로 못하니 가게세가 2년 밀렸다더라”고 했다. 결국 고 씨는 식당을 하면서 번 돈으로 장만한 독립문 인근의 아파트를 팔았다. 이 돈으로 ‘빚잔치’를 하고 남은 돈으로 아들딸이 살고 있는 강서구에 전셋집을 얻었다.
가게 문을 닫는단 소식에 서둘러 걸음하는 단골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고 씨는 “그동안 자주 못 와서 미안하다고, 다 닫아도 우리 집은 안 닫을 줄 알았다고 하는데 고맙더라”며 “손님들 생각하면 고맙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고 씨는 일단 건강을 추슬러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자주 넘어짐 사고를 당해 허리 보호대를 찬 채로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식당을 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집에 있으면 아파도 가게 나오면 싹 나았는데, 이제 집에서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손님들이 다시 가게 열면 인터넷에 올리라고 하던데 건강만 좋아지면 다시 식당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때 타고 허름해진 통술집 간판은 이제 횟집 새 간판으로 바뀔 예정이다. 고 씨는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도 버텼는데… 막상 가게를 내놓으니 너무 눈물이 나더라”며 “고마운 손님들을 어디서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다시 눈물을 닦았다.
손님을 귀히 여기는 고 씨는 가게 입구에 안내문을 붙였다. “즐거운 추억으로 여러분 기억에 남길 바라며…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통술집 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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