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 ''이지하우스''..태양광패널 등으로 전기 생산
단지 내 5대 에너지 소비 충족 가능
30% 비싼 건설비 숙제.."공공주택 시장 형성해야"
|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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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태선 기자] 냉난방 장치를 가동하지 않고도 여름에 26도, 겨울에 20도를 유지하는 집이 있다. 폭염이 맹위를 떨치던 올 여름 에어콘 3대가 24시간 가동해도 월 전기사용료가 9만원을 넘지 않는다. 국내에서 하나 밖에 없는 친환경 에너지제로주택인 ‘노원 이지(ez, Energy Zero)하우스’의 얘기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있는 이곳을 찾아 비결을 들어봤다. ‘이지하우스’는 에너지 자급자족을 목표로 건설된 전국 최초 공동주택단지다. 그래서 이름도 에너지 제로(energy zero)의 약자를 땄고 ‘이롭고 지속 가능하다‘는 뜻을 지녔다. 노원구가 하계동 1만7652㎡의 터를 댔고, 국토교통부·서울시·노원구·명지대가 총 442억원의 사업비를 공동 투자했다. 지난해 11월 준공한 121채 규모의 단지로 공공 임대주택으로 운영돼고 있다. 입주민 대부분이 행복주택 입주 요건을 갖춘 신혼부부나 노령층이다. 작년 12월 오픈하우스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깜짝 방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단지 입구에 들어서면 천편일률적인 기존 아파트와 달리 사람냄새 나는 디자인에 놀라게 된다. 도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지붕 없는 발코니가 있고, 발코니 하단 부분은 버선코처럼 들어올렸다.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아파트 벽면과 옥상 등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조차 멋을 낸 장식처럼 보일 정도다. 태양광 패널은 연간 400㎿h의 전력을 생산한다. 단지 전체의 연간 5대 에너지(난방·냉방·급탕·조명·환기) 소비량(330㎿h)을 공급하고도 남는 양이다. 영국 런던의 베드제드,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주거 단지처럼 지속 가능한 공공주택을 목표로 설계 때부터 공을 들였다.
실제 이곳에 살면서 에너지제로주택을 연구하는 이응신 명지대 제로에너지건축센터 교수는 “에너지제로 주택은 건축설계단계에서부터 태양광이나 지열을 이용하는 액티브 설계 뿐아니라 패시브(Passive)기술을 적용한 국내 첫 사례로 일반주택의 평균 에너지 요구량보다 61%나 절감된다”며 “주택 내·외부에 틈이 새지 않도록 고기밀 구조로 설계하고 열이동을 최소화하는 3중 유리와 외부 블라인드로 단열 성능을 극대화한 건축 형태”라고 설명했다. 패시브 하우스는 ‘수동적(passive)인 집’이라는 뜻으로, 집안의 열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차단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실내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한다.
단지는 우선 동간 간격이 넉넉하고 높이가 7층 이상을 넘지 않아 시원하지만 아늑한 느낌을 준다. 일반 아파트 거리가 건물 높이의 0.8배인 반면 이지하우스는 1.2배다. 동간 간격을 충분히 벌려 태양광 패널이 부착된 벽면에 그늘이 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남향으로 반듯하게 자리잡은 집안으로 들아가면 전면 통유리창에서 햇빛이 쏟아진다. 뜨거운 여름에는 통유리창 밖에 설치한 알루미늄 불라인드로 햇빛량을 조절한다. 이 블라인드는 바람이 일정 풍속을 넘어가면 유리창 파손을 방지하기 위해 자동으로 올라가는 등 고도의 기술력이 녹아 있다. 또 단열재를 건물 외벽에 붙이는 등 외부의 열이 유입되는 틈새를 안팎으로 차단해 보온병처럼 건물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도록 했다. 내부에는 특수 순환형 후드와 열 회수 환기 장치를 설치해 요리할 때 발생하는 냄새는 배출하고 열만 즉각적으로 회수한다. 부족한 에너지는 옥상과 베란다 측면에 부착한 태양광 패널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활용한다. 또 지중열을 활용하기 위해 고효율 히트 펌프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지난 9월에는 국내 최초로 공동주택분야에서 독일 패시브하우스(PHI) 인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 이지하우스 측면과 옥상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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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지하우스가 들어서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시 김성환 노원구청장(현 민주당 국회의원)의 공이 컸다. 2014년 국토부가 발주한 ‘제로에너지 주택 실증 단지’ 공모 사업에서 노원구는 대구, 세종시와 경합했다. 독일에서 패시브하우스 설계로 노하우를 쌓은 이명주 명지대 건축과 교수(제로에너지 주택 실증단지 연구단장)와 의기투합한 그는 에너지 제로주택 유치를 위해 직접 뛰었다. 먼저 학생수가 수가 줄면서 필요 없어진 학교부지를 확보했다. 그린에너지에 관심이 많은 박원순 서울 시장도 의기투합해 기초자치단체인 노원구가 광역자치단체인 대구나 세종시에 밀리지 않도록 힘을 보탰다. 공모 심사를 위한 인터뷰에서는 단체장 중 유일하게 김 구청장이 직접 참석해 노원구 유치 필요성을 알렸다. 덕분에 서울시 노원구 이지하우스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명주 교수는 “이지하우스는 동일 규모의 2009년 주택보다 약 97만원 수준의 에너지 비용이 절감된다”면서 “이곳 입주민들이 시스템에 2~3년 더 적응하면 세대별로 취사 및 가전제품에 대한 전기에너지와 단지내 주차장, 엘리베이터 등 공용 부분에 대한 전기 에너지 비용으로 월 2만7000원 정도만 부담하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지하우스 확산에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건설비용이 공공임대주택보다 30% 정도 비싸다. 이응신 교수는 “설계·연구개발·전시 등에 들어간 예산을 제외하고 단지를 짓는데 소요된 돈만 300여억원이 들어갔다”면서 “98% 국산제품을 사용했는데 일부는 주문 제작하거나 개발하는 등 애로점이 많았지만 기술 개발과 함께 공공주택 부분에서 먼저 시장을 형성해 준다면 비용은 계속 낮춰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노원 이지하우스를 계속 연구 모니터링해서 오는 2025년까지 제로에너지 주택 공급 목표의 실현 가능성 등을 점검할 방침이다.
| 단지 옆에는 전기 자동차 충전소와 쉼터를 마련했다. 노원 이지하우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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