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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년간의 임기를 마무리 한 조환익 전 한전 사장이 이데일리와 만나 ‘파격 제안’을 했다. ‘한전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같이 답했다. 조 전 사장은 “현재 본부장급 체제로는 안 된다”며 “(대기업처럼) 부문별 CEO가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 전 사장은 역대 한전 사장 중 두 번째로 긴 임기 동안 사장직을 맡았다. 산업자원부 차관 등 공직 기간까지 포함하면 정부 및 공기업에 약 44년간 재직했다. 2012년 12월 그가 사장에 취임했을 당시 한전은 심각한 적자 상태였다. 이에 전기요금 인상, 경영 쇄신 작업이 잇따랐다. 지난해 한전은 60조1903억 매출, 영업이익 12조16억원을 달성했다.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을 수주(우선협상대상자 선정)하는 성과도 올렸다.
◇“매출 60조 한전에 부문별 CEO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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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탈원전·탈석탄 등 에너지 전환 정책도 변수다. 정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2031년)에 따르면 현재 24기(22.5GW)인 원전은 2030년까지 18기(20.4GW)로 줄어든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설비는 올해 11.3GW에서 2030년에 58.5GW로 대폭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올해 전체 전력 설비의 50.9%를 차지하는 원전·석탄 발전의 비중이 2030년에는 34.7%로 줄어들게 된다. 원전·석탄 발전에 의존하는 한전의 수익 구조가 바뀌어야 하는 셈이다.
조 전 사장은 “신재생 확대는 각오했던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 전 사장은 △2015년 12월 온실가스 감축을 하기로 한 파리기후협정 체결 △경제성(연료비) 위주의 발전에서 환경·안전급전으로 전환한 지난 3월 전기사업법 개정 △LNG 설비를 투자해 놓고 가동 못하게 되면서 기저부하로서 원전 비중의 감축 필요성 등을 언급했다. 조 전 사장은 “에너지전환 정책에도 맞춰 가야 한다. 쉽지 않습니다만 한전이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신재생 단가 낮춰야 탈원전 정책 성공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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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전 사장은 “이런 일들을 거치며 지난 5년간 많이 힘들었지만 행복했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는 질문에 “직원들과 함께 2013년 전력난을 극복한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답했다. 이어 “문전박대(門前薄待) 받던 영국 원전 사업에 중국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에 남다른 감회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사람으로는 한전 노조,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 아랍에미리트 원자력공사(ENEC) 모하메드 알 하마디 사장을 꼽았다.
조 전 사장은 내년 지방선거 출마설에 대해 “한전 사장 출신이 정치를 하면 한전이 얼마나 괴롭겠나”라며 “정치를 한다고 하면 후임자까지 쫓아가서 말릴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마무리 못한 일에 아쉬움도 있지만 내가 다 해선 안 된다”며 “한전의 시스템이 사장을 일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인터뷰=이데일리 정경부 세종취재팀 피용익 팀장, 최훈길 기자
▷조환익 전 사장은…
1950년 서울 출생.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뉴욕대 스턴스쿨에서 경영학 석사, 한양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3년 행시 14회로 임용돼 주미 한국대사관 상무관보, 무역투자실장, 산업자원부 차관을 역임했다. 2007년부터 한국수출보험공사(현 무역보험공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한국전력까지 3곳의 공공기관장을 맡았다. 2012년에 19대 한전 사장으로 취임, 두 차례 연임에 성공해 이달 8일까지 약 5년(1817일) 간 일했다. 역대 한전 사장 중 두 번째로 긴 임기 동안 세 정권을 거쳐 사장 직을 수행했다. 저서로는 ‘한국, 밖으로 뛰어야 산다’, ‘우리는 사는 줄에 서 있다’, ‘조환익의 전력투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