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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7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농산물을 파는 작은 야채가게 하나가 문을 열었다. 다른 가게보다 비싼 가격에 물건을 내놓았음에도 이내 무공해 농산물을 판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몰리기 시작했다. 예순 일곱살의 주인은 가게를 찾아온 기자에게 거듭 강조했다.
“척박할대로 척박해진 땅에서 농사가 제대로 될리가 없다. 지난 5년간 풀이며 인분과 경겨 등 퇴비를 매년 트럭 100대 분량으로 쏟아 부었다. 퇴비주기와 잡초뽑기 등으로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이제 수확량이 농약과 비료를 쓰는 땅을 능가한다.”
◇한국 유기농업의 선구자 원경선 원장
가게에서 파는 농산물은 주인이 경기도 양주군 농장에서 농약을 치지 않은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것들이었다. 그중 국내서 보기 어려웠던 음료도 있었다. 바로 케일로 만든 녹즙이었다. 가게의 상호는 ‘무공해 농산물 공급점 풀무원’. 육십대 후반의 주인은 한국 유기농업의 선구자로 꼽히는 원경선 원장이었다.
원경선 원장(1914~2013)은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열여섯 살 되던 해에 농군의 길로 들어선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일제 강점기에 성공한 청년 농장주로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고 해방 후에는 건축사업을 통해 돈을 제법 모았다. 그러나 한국전쟁 중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장남을 병으로 잃으면서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
불혹을 넘어선 1955년. 원 원장은 경기도 부천의 황무지를 개간해 ‘풀무원 농장’을 마련하고 고아와 부랑아 등 오갈 데 없는 이들을 위한 공동체를 세웠다. 고철도 대장간에서 풀무질을 통해 농기구 등으로 거듭나듯이 농장 식구들을 세상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뜻에서 농장 이름을 ‘풀무원’이라고 지었다.
1976년 경기도 양주로 농장을 옮긴 후 국내 최초로 화학 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을 시작하면서 한국 최초의 유기농민단체 ‘정농회’를 설립했다. ‘바른 먹거리’라는 슬로건으로 매출 2조원 규모의 식품기업으로 성장한 풀무원은 바로 원 원장의 풀무원 농장을 모태로 하고 있다.
◇녹즙기 쇳가루 파동…풀무원녹즙의 탄생
풀무원 농장에서 나는 농산물을 팔았던 압구정동의 가게는 차츰 콩나물과 두부로 품목을 넓히면서 3년 뒤 ‘풀무원식품’으로 거듭난다. 이후 풀무원식품은 믿을 수 있는 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빠르게 성장한다. 주부들에게 인지도가 높았던 풀무원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건강식품기업으로 다가간 계기는 1995년 6월 출시한 ‘풀무원 녹즙’ 덕분이다.
현재 풀무원건강생활에서 나오는 ‘풀무원 녹즙’은 풀무원의 기업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대표적인 제품으로 손꼽힌다. 각종 야채의 즙을 뜻하는 녹즙은 1990년대 일반 가정용 녹즙기가 나오면서 대중화 됐다. 1990년에 접어들면서 직장인들의 과로가 본격적으로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고 식생활이 서구화 되면서 육류 소비가 늘어나고 이에 따른 각종 성인병 지수도 높아졌다.
녹즙은 1990년대 초반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집에서 직접 해 먹을 수 있는 건강식의 대표주자로 각광을 받았다. 1991년 50억원 규모였던 녹즙시장은 1993년에는 10배 가까이 늘어난다. 그러나 1994년 일부 녹즙기에서 쇳가루가 검출되면서 녹즙 시장은 삽시간에 줄어 든다. 건강을 위해 마셨던 녹즙의 안전성에 의문이 생기면서 소비자들이 녹즙을 외면했다.
풀무원은 위기가 오히려 기회라고 여겼다. 이미 1981년 압구정동의 작은 가게였을 때부터 케일녹즙을 팔았던 풀무원은 녹즙이 지닌 건강기능성에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풀무원은 녹즙 자체는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해 풀무원 농장을 운영하며 체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소비자들에게 직접 배달하는 방식으로 녹즙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모닝스탭’ 통한 직접 배달, 녹즙 시장 부활시키며 1등 브랜드 굳혀
풀무원은 풀무원 농장에서 재배한 100% 유기농 명일엽과 케일을 선택했다. 녹즙 제품의 주된 가공 방식이 즙을 짜는 착즙 방식이었기 때문에 농약 성분이 거의 없는 유기농 원료를 사용하는 것이 필수였다. 제품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유통은 또 다른 문제였다. 풀무원녹즙은 열처리와 같은 가공 방식을 거치지 않고 착즙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기에 냉장 배송이 아니면 제품 유통 과정에서 하자가 생길 수 있었다. 결국 기존의 마트나 소매점 출점을 포기하고 배달판매사원 조직을 꾸렸다. ‘모닝 스텝’(Morning Staff)으로 불리는 배달판매사원은 당일 생산한 녹즙을 다음날 새벽에 가정과 일터로 배달했다. 여기에서도 풀무원은 차별화를 꾀했다. 녹즙이 실온에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섭씨 영상 2도를 유지하는 공장 물류센터에서 개별 소비자에게 갈 배송가방을 꾸려 모닝스탭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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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원녹즙은 금새 건강기능음료 시장의 간판 제품으로 부상했다. 1996년 80억원이었던 풀무원녹즙의 매출은 20년만에 연간 1470억원 규모로 늘어났고 녹즙 시장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이 커지고 제품을 다양화 하는 과정에서 문제도 불거졌다. 채소와 과일을 기반으로 한 녹즙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원료의 맛과 향이 달라져 대량 생산 과정에서 품질 관리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특히 폭우나 가뭄, 폭설 등 천재지변에 의해 산지에서 원료 수급이 중단될 때는 해당 녹즙 제품 자체를 생산하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풀무원건강생활은 시행착오 끝에 녹즙 원료 전량을 전국 각지의 농가와 계약을 맺어 공급받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풀무원건강생활은 각 농가의 재배환경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관리해 원료 수급에 대한 리스크를 줄였다. 덕분에 국립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정한 300여개의 기준을 모두 통과해 안전성을 입증 받은 재료를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풀무원녹즙의 성공은 이후 국내 식음료업계에서 원료의 중요성과 함께 소비자들이 건강에 초점을 맞춘 제품을 선호한다는 시그널을 주었다. 무엇보다 식품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공산품이 아니라 건강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음식이며 몸을 낫게 하는 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그 성공의 밑바탕에는 풀무원 농장을 통해 국내에 유기농을 선도했던 원경선 원장이 평소 “내 자식에게 먹이지 못할 것이면 팔지 마라”고 했던 철학이 자리잡고 있다.
여익현 풀무원건강생활 대표는 “풀무원은 대한민국에 변변한 건강식품도 관련 규정도 없던 그때에 ‘바른 먹거리’에 기초한 과학적인 건강식품과 바른식생활 시스템을 개발함으로써 업계에 표준을 세우며 성장해왔다”며 “풀무원녹즙은 농부 원경선이 그랬듯 사람과 자연에 바쳐진 거룩한 정신을 브랜드 가치로 삼아 이 땅의 바른 먹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