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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블랙리스트' 윤이상…탄생 100년 지워진 이름 돌아오다

김미경 기자I 2017.09.17 09:22:30

‘동백림 사건’ 연루 50년간 ‘간첩’ 꼬리표
김정숙여사 계기로 음악과 업적 재조명
17일 기점해 국내외 연주 윤이상의 귀환

9월 17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고(故) 윤이상(1917-1995)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국내외 그의 음악 세계를 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사진=경기도문화의전당).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오늘(9월17일)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이 태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국내외 곳곳에서 그의 음악 세계를 조명하는 연주회가 잇달아 열린다.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독일을 공식 방문한 김정숙 여사가 윤이상의 묘소가 안장된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를 찾아 참배하면서 음악가 윤이상이 남긴 음악과 업적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선생이 살아생전 일본에서 타신 배로 통영 앞바다까지만 와보시고 정작 고향땅을 못 밟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많이 울었다. 그래서 고향 통영에서 동백나무를 가져왔다. 선생의 마음도 풀리시길 바란다.”(김정숙 여사)

윤이상(1917. 9. 17~1995. 11. 3)은 ‘원조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세계적인 작곡가로 손꼽히지만 과거 북한 방문과 관련된 논란으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해왔다. 늘 자신의 조국을 작품에 담아냈던 그는 1995년 잠들 때까지 다시 고향을 밟지 못했다.

△‘20세기 블랙리스트 작곡가’이자 ‘음악을 좋아한 통영 소년’

음악적으로 윤이상은 동양과 서양을 끌어안았다. 1960년대부터 독일에 체류한 윤이상은 유럽에서 동서양의 음악 기법·사상을 융합시킨 현대음악가로 평가받는다. 가야금 연주의 농현 기법을 비브라토로 바꿔 표현하고, 민요와 판소리에서 끊어지지 않고 이어서 내는
1960년대 후반 박정희 정권과 중앙정보부는 이른바 ‘동백림 사건’의 간첩 혐의로 윤이상을 독일에서 국내로 납치해와 고문을 자행하고 2년 가까이 교도소에 감금했으며 세계적 비난 여론이 들끓자 마지못해 석방한 뒤 추방했다(사진=통영문화재단).
기법을 첼로나 바이올린 연주에 사용했다. 이를 통해 ‘동서양을 잇는 중계자 역할을 한 음악가’라는 지위를 얻었다.

동시에 사상적으로는 남북한 사이에서 이념 논쟁에 시달려왔다. 국내에서 친북 인사로 낙인찍혀 있다. 그는 1967년 동베를린(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북한 방문이 빌미였다. 독일 유학생 시절 북한에 있는 강서고분의 ‘사신도’를 직접 보겠다며 방북했다가 간첩으로 몰려 기소되면서 줄곧 이념 논란에 시달렸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슈토크하우젠·지휘자 카라얀 등 세계적 음악가 200명이 탄원서를 제출해 풀려난 뒤 독일로 돌아간 윤이상은 1995년 베를린에서 영면할 때까지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윤이상 선생이 별세한 뒤, 부인(이수자)과 딸(윤정)은 통영으로 와 살고 있다.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은 2007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조사를 통해 정권에 의해 과장된 사건으로 밝혀졌다.

윤이상은 1917년 9월17일 경남 산청의 한 가난한 양반집 서자로 태어났다. 세 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통영으로 이사한 소년은 쪽빛 남해바다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고장에서 늘 음악을 느꼈다. 이 선율은 이후 그의 작품 속에서 재탄생했다. 그는 14세 때 독학으로 작곡을 시작해 1956년 유럽 유학을 떠나 3년 만에 독일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에서 데뷔했다. 동양과 서양의 음악기법 및 사상을 융합시킨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다. 유럽 평론가들이 뽑은 ‘20세기의 중요 작곡가 56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생전 관현악곡, 실내악곡, 오페라 등 15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와의 대담에서 그는 아버지와의 밤낚시를 했던 통영 앞바다를 이렇게 떠올렸다. “우리는 아무말 없이 잠자코 배 위에 앉아 물고기가 헤엄치는 소리나 다른 어부들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남도창’이라 불리는 침울한 노래인데, 수면이 그 울림을 멀리까지 전해주었습니다. 바다는 공명판 같았고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7월5일 오후(현지시간)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있는 작곡가 윤이상 묘소를 방문해 참배하고 있다. 이날 윤이상 묘비 앞에는 그의 고향인 통영에서 공수해온 동백나무 한 그루가 심어졌다(사진=연합뉴스).
△이름 되찾았다…김정숙 여사 참배 뒤 여론 형성

김정숙 여사의 윤이상 묘소 참배 이후 잊혀져가던 윤이상의 이름을 되찾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그의 고향인 경남 통영시는 ‘도천테마기념관’을 개보수해 15일 다시 문을 열면서 이름을 ‘윤이상기념관’으로 바꾸었다. 이념 논쟁 속에 사용할 수 없었던 이름 ‘윤이상’을 바로 잡은 것이다.

도천테마파크는 2010년에 지어졌다. 통영시는 애초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도천동 생가터에 해당 테마파크를 짓고 그 이름을 윤이상 기념공원으로 부르기로 했지만 이후 이념 논쟁에 휘말리면서 지명을 딴 이름을 사용해왔다. 이 곳에는 윤이상이 다루던 악기 등 유품 148종 412점이 전시돼 있다. 기념관 부속 건물인 ‘베를린하우스’도 꾸며놓았다. 선생의 베를린 자택을 1/4 크기로 본떠서 조성해 놓았고, 선생이 독일에서 탔던 승용차도 있다.

수년째 방치되다시피 했던 독일 베를린 ‘윤이상 하우스’도 개보수를 거쳐 재개관한다. 윤이상평화재단은 9월 18일 개관식을 갖고 기념관과 베를린 한국현대음악센터로 이용할 계획을 세웠다. 이는 시민들이 후원한 ‘스토리 펀딩’ 덕이다. 재단은 윤이상하우스 개보수에 들어가는 비용을 시민 모금으로 마련했다. 지난 8월15일까지 1000만원을 모으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100%를 달성했다. 펀딩에는 작곡가 유희열, 황석영, 배우 권해효 등이 참여했다.

△‘상처입은 용’의 작품, 국내외서 연주되다

베를린 현지에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윤이상 연주를 이끌 지휘자 성시연(사진=경기도문화의전당).
이 같은 재조명 움직임에 맞춰 그의 음악은 ‘줄소환’ 중이다. 우선 올해 창단 20주년을 맞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경기필)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윤이상 탄생인 17일 독일 베를린 현지에서 그가 남긴 교향악 작품을 올린다.

경기필은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베를린 음악 페스티벌의 초청 공연으로, 윤이상의 관현악곡인 ‘무악(舞樂)’과 ‘예악(禮樂, 1966), 리게티 등의 작품을 연주한다. 또한 윤이상의 제자였던 도시오 호소카와의 작품도 연주하고, 소프라노 서예리가 협연한다. 베를린 필하모니에서는 배리 가빈 감독이 윤이상의 생애를 조명해 만든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은 선생의 1980년 작품인 ‘밤이여 나뉘어라’라는 주제로 윤이상기념공원에서 24일까지 야외 사진전을 연다. 선생의 일대기를 사진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자리다. 또 17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는 ‘해피 버스데이 윤이상’이 펼쳐진다.

서울문화재단도 17일까지 ‘프롬나드 콘서트’를 선보인다. 문화역서울 284, 윤동주문학관, 서울로7017에서 진행된다. 첼리스트 고봉인은 오는 22일 금호아트홀에서 헌정 무대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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