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최현석기자] 정부가 파생상품 거래에 뛰어들어 1조8000억원 가량의 비용과 손실을 낸 것으로 파악됐으나, 어느 누구도 책임지겠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전가의 보도인 `국익`을 거론하며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요구만 할 뿐, 구체적인 거래 규모나 책임 여부는 국회의원들에게 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역외선물환(NDF) 거래내역을 보고하고도 정작 국민들에게는 `쉬쉬`하려는 자세를 보이자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물론 야당 의원들도 명확한 책임소재 파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 구축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 정부, 혈세 1.8조 날리고도 `버티기`
지난 11일 edaily를 통해 환율안정에 쓰이는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1조8000억원이 사라졌다는 보도가 나간 뒤 신문과 방송의 질책과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의 추궁이 잇따르자 정부는 파생상품 시장을 통한 환율개입을 공식 시인했다.
그러나 이후로는 어떤 경로로 비용이 지난해 1000억원에서 올해 1조8000억원으로 급증했는지,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지 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오히려 재경부는 "부총리가 지난 11~12일 국정감사에서 정부 입장을 밝힌만큼 더 이상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보도자제를 요청했다. `파생상품을 통해 개입했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듯하다.
◇ 시장·정치권, "책임소재 따져야"
시장 참가자들이나 정치권에서는 정부의 `능구렁이 담 넘어가기`식 전략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미 IMF에 NDF 내역을 보고해 변칙적 개입 사실이 해외에 알려진 만큼 세금을 낸 국민이나 행정부를 견제하는 입법부에서 최소한의 내역은 알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외환위기 당시 정부가 비정상적 시장조작 방지를 약속하고도 최근 IMF에 역외선물환(NDF) 거래내역을 보고하는 등 외환정책 위축과 국가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만큼 책임을 분명히 가려야 한다는 데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외국계은행 한 관계자는 "옵션시장에서 과거 10%였던 원화환율 변동성이 올해 6%로 떨어지며 고정환율제인 중국 위안화를 밑돌게 된 건 1년이상 지속된 정부 개입 때문"이라며 "환율의 안정적 운용 목적은 인정하나, 파생시장 개입에 따른 스왑시장 혼란과 역외시장 참여 차단, 환율 정체에 따른 현물환과 옵션시장 위축 등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국회의원들은 국회 승인을 거치지 않은 스왑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의 위법성 여부도 분명히 따지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한나라당측은 국민연금간 통화스왑(CRS) 거래를 활용한 달러매수 개입에 대해서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감사원 감사청구를 정식 제안하는 등 구체적인 수순을 밟고 있다.
한나라당 윤건영 의원측은 "스왑거래가 외국환 운용차원이었다면 스왑으로 조달한 원화를 만기때까지 보유해야지 다시 달러를 사들여 뻥튀기한 건 분명한 불법으로 본다"며 "재경부에서 계속적으로 국회의 자료협조 요청을 거부할 경우 감사원 감사 청구는 물론 국회조사권 발동이라는 초강수가 동원될 수 있는 만큼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도록 협조 바란다"고 당부하는 등 한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일부 의원들은 실무책임자인 국장급은 물론 전, 현직 장관의 관여 정도를 따지겠다는 의지도 피력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측 역시 "IMF에는 정기 보고하며 환율정책을 위축시켜 놓고 국민한테만 비밀이라는 건 누가봐도 불합리한 행동"이라며 "국익을 위해 의원들조차 요구에 조심해온 개입내역을 IMF에 보고하게 된 경위와 향후 통상관련 문제점 등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 재경부 독주에 "브레이크 설치 시급" 목소리 높아져
재경부의 무리한 시장개입에 대한 견제장치 등 대안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회의 외환시장안정용국고채(환시채)와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한도 승인 기능이 견제 역할을 해야 하나 정부가 파생거래를 통한 자금을 조달할 경우 국회견제 기능이 약화될 수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스왑을 통해 환시채 발행한도를 초과하는 규모의 개입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데다 비상시에나 통하는 `사전개입-사후승인` 형태가 일반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경부가 공동 외환당국인 한국은행의 의견을 종종 무시하는 행태도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한은은 지난해 파생거래를 통한 개입이나 올해초 역외선물환(NDF) 시장 규제 등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제지할 권한은 없었다.
재경부 규정에 따라 한은이 외평기금 운용과 회계 처리를 담당하고 있으나, 이번 사건처럼 재경부가 딴 주머니를 차고 있는 경우에 대한 견제장치도 필요해 보인다. 회계처리 만큼이라도 한은에서 독립적으로 권한을 가질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창배 선임연구원은 "얼마전 한은법 개정 필요성을 제기하며 언급한 것처럼 한은이 물가외에 금융시장 안정 등에도 정부와 함께 노력할 수 있게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해 보인다"며 "시장 자체 불안정은 물론 개입에 따른 시장불안정에 대해서도 한은이 견제할 수 있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