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그들이 남긴 문화유산도 보존해야 하지만,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민중들의 숭고한 희생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독립을 이루기 위해 거리낌없이 나섰던 다수의 사람들이 없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다만 이들의 삶은 지도자와 영웅들의 이름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고 역사의 한 페이지로만 남았다.
정병욱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3.1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교육받지 못하고, 종교도 없는 민중들이 대다수였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며 “3.1운동의 가장 큰 의미는 엘리트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까지 식민통치에 반대해 함께 ‘만세’를 외치며 봉기했던 것에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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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시위에서는 12살 소녀가 총에 맞아 사망하기도 했어요. 일제 검경의 4월 말 집계 보고에 따르면 13명이 사망하는 잔혹한 진압이 이루어졌죠. 홍석정도 이 3차 시위에서 총에 맞아요. 밤새 걷느라 다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만세시위에 참여했을 홍석정은 그제야 영원한 쉼을 얻게 됐죠.”
대중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시각장애인 독립운동가 심영식(심명철)도 있다. 그는 ‘맹인 주제에 무슨 독립운동이냐’는 일본 간수의 조롱에 “내가 눈이 멀었을지언정 독립의 마음까지 멀었겠는가”라고 당당히 답했다. 심영식은 유관순 열사와 같은 8호 감옥에 갇혔던 인물이기도 하다. 1887년 개성에서 태어난 심영식 열사는 어릴적 열병을 앓은 뒤 시력을 잃었다. 이러한 신체적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1919년 3월 당시 권애라, 신관빈, 어윤희 등과 함께 개성 시내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데 앞장섰다.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속에서 보이는 3.1운동 참여자들의 부은 얼굴, 표정과 눈은 3.1운동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정 교수는 “만세시위로 잡힌 이들의 수감사진을 들여다보면 보통의 사진처럼 사각형이 아닌 양옆이 비스듬히 잘려 있다”며 “잘린 면을 중심으로 맞춰 보았더니 5~6인씩 찍은 단체사진이었다”고 말했다.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많은 이들이 있었다는 방증이다.
정 교수는 3.1운동 105주년을 기념해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희망과 바람을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100여년 전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함께 ‘공화정’(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기존 체제가 민중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수원군 장안면과 우정면의 만세시위, 제주 신좌면 만세시위 등 민중이 중심이 됐던 독립운동도 많이 있다”며 “3.1운동의 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하기 위해서는 만세운동에 참가했던 많은 이들의 꿈과 이상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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