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든, ‘의회 패싱’ 역대급 빚 탕감
24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연설을 통해 연 12만5000달러 미만의 소득을 올리는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학자금 대출 부채 중 1만달러를 탕감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기혼 부부일 경우 합산 연소득 25만달러 미만이 기준이다. 한국 돈으로 1인당 1억7000만원, 부부 합산 3억6000만원의 소득에 미치지 못할 경우 학자금 빚을 면제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연방정부 장학금인 ‘펠 그랜트’(Pell Grant)를 받은 이들이 융자 받은 대출금에 대해서는 2만달러까지 채무를 면제하기로 했다. 대출 상환액 징수 비율도 낮췄다. 미국 정부는 현재 가처분소득에서 기본생활비를 뺀 재량소득의 10%까지 학자금 대출 상환액으로 징수할 수 있는데, 이 한도를 5%까지 내렸다. 아울러 팬데믹 직후인 2020년 3월 시작한 학자금 대출 상환 유예 조치를 올해 연말까지 연장했다. 당초 종료일은 이번달 말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같은 조치를 의회 입법이 아닌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 확정했다. 사실상 의회를 ‘패싱’한 강행이라는 평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조치로 대출자의 95%인 4300만명이 혜택을 보고 2000만명은 학자금 대출 채무를 완전히 탕감 받을 것”이라며 “4300만명 중 60%는 펠 그랜트 수혜자들”이라고 했다. 어림잡아 2500만명 이상이 최대 2만달러의 빚을 내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그는 “학자금 빚을 떠안은 세대를 돕기 위한 것”이라며 “이 부담이 너무 무거워 대학을 졸업해도 한때 학위 보유자가 누렸던 중산층 삶에 접근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역대 최대 규모의 학자금 대출 탕감이다. CNBC가 인용한 학자금 전문가인 마크 칸트로비츠의 분석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의 1만달러 부채 탕감 조치로 연방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2440억달러(약 327조700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펠 그랜트 수혜자들을 위한 2만달러 면제 조치는 1200억달러를 더할 전망이다. 총 비용 부담이 3640억달러, 한국 돈으로 약 489조원에 달한다. 정부가 500조원 가까운 돈을 풀어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과 같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1만달러 탕감시 2300억달러의 비용이 들고 펠 그랜트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추정했다.
◇더 탕감해줘야 vs 학자금 사회주의
일각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려는 정치적인 해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에 힘입어 40%를 돌파했는데, 빚 탕감을 마지막 승부수로 던져 승리 굳히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다만 미국 사회는 워낙 큰 돈이 드는 정책인만큼 사실상 양분되다시피 하고 있다. 학자금 상환 부담을 덜어 원활한 경제 활동을 도와야 한다는 쪽과 성실하게 대출을 다 갚은 이들의 반발을 부를 것이라는 쪽으로 갈라져 있다.
흑인 인권단체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의 데릭 존슨 대표는 “1만달러 탕감 조치로는 부족하다”며 “이 정도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구조적인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과감한 탕감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이미 빚을 갚은 이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번 정책을 ‘학자금 대출 사회주의’라고 칭하면서 “대학에 가기 위해 저축한 이들, 대출액을 모두 갚은 이들, 학자금을 위해 군에 입대한 이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맹비난했다. 국민이 낸 세금을 학자금 대출 상환에 쓰는 게 적절하냐는 ‘포퓰리즘’ 지적도 있다.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더 부채질할 것이라는 관측 역시 적지 않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학자금 대출 탕감을 위해 재정을 추가로 투입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비합리적이고 과도한 조치”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