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글쓰기를 즐겨하는 대학생 A(24·여)씨. 김씨는 두 차례나 독립출판을 한 경험이 있는 어엿한 작가다. A씨는 지난해 7월 '절대 잊지 않을게(Nunca olvidare)'라는 책을 펴낸 데 이어 최근에는 대학 동기들과 함께 '스물셋, 마침'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A씨는 "일기 형식의 일상 기록부터 독후감, 정보 등 다양한 성격의 글을 블로그에 기록했다"며 "그러던 중 독립출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동안 작성했던 글을 책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MZ세대들은 취미를 단순 여가 활동을 즐기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림그리기 취미는 그림을 활용한 굿즈로, 글쓰기 취미는 책으로, 운동으로 만든 몸은 사진으로 각각 남기는 등 자신의 취미를 기록하고 결과물로써 남기고 있다.
"블로그에 쓰던 글, 책으로 쥐어보니 뿌듯"
A씨도 취미로만 블로그에 적던 글을 출판한다는 게 부담스럽기만 했다.
‘책을 출판하면 작가가 되는 건가. 너무 거창한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가상 세계에서만 존재하던 글을 실물화하고 맛볼 성취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전부터 ‘1인 출판’, ‘독립 출판’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개인 단위의 출판 과정이 단순해진 것도 한몫했다.
A씨는 “출판을 하고 나니 정말 작가가 된 기분이었다”며 “글뿐만 아니라 책의 템플릿까지 모두 내 손을 거치다 보니 (책에 대한) 애착도 커지고 향후 포트폴리오로도 활용 가능하다”고 했다.
취미가 비슷한 여러명의 사람들이 함께 책을 출간하기도 한다.
동기들과 협업한 '스물셋, 마침'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통해 홍보와 판매를 병행했다. 출판 초기 비용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직접 그린 그림으로 제품 판매해보고 파"
B(23·여)씨는 태블릿PC에 각종 캐릭터를 그리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취미를 갖고 있다. B씨는 그림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림으로 각종 굿즈(상품)를 제작한다.
올해는 십이지신을 그려 새해 달력을 만들었다. 이전에는 자신이 디자인한 캐릭터로 휴대폰 케이스와 보조배터리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을 주기도 했다.
B씨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나에게는 취미가,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선물이 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전했다.
그는 "나의 새로운 가능성도 발견했다"며 "‘내가 이런 것도 만들고 기획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진로든 취미든 내게 맞는 일은 무엇일까 늘 고민했다"며 "굿즈를 만들어보면서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B씨의 최종 목표는 자신이 만든 굿즈를 판매해보는 것이다. 그는 “내 그림이 그려진 굿즈를 판매하려면 그림 실력도 더 높여야 하고 나만의 정체성도 확실해야 한다”며 “이렇게 동기가 생기니 삶에 활력이 생기는 기분”이라 밝혔다.
진입 장벽 낮아진 '프로필 촬영'…몸 만들기엔 최고의 동기 부여
모델이나 전문 피트니스 선수들만 하는 것으로 인식됐던 바디프로필 촬영도 일반화되고 있다.
바디프로필 촬영을 준비 중인 C(22·여)씨는 얼마 전부터 필라테스에 푹 빠졌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앓아온 척추측만증이 더 심해지면 안 될 것 같아 맘을 굳세게 먹고 운동을 시작했다.
필라테스의 효과를 반신반의하면서도 꾸준히 운동한 결과 임씨는 체형 교정뿐만 아니라 체중 감량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운동을 통해 몸을 건강하게 변화시키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고, 근육 증량을 목표로 헬스까지 병행하게 됐다. 그 결과 유행 중인 바디프로필 촬영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다.
C씨는 "몸무게나 근육량과 같은 수치도 중요하지만 바디프로필을 준비할 때는 ‘내 눈에 몸의 변화가 보일 때’ 가장 큰 동기 부여가 된다"며 "평소 마음에 담아뒀던 (바디프로필 전문 촬영)스튜디오에 덜컥 예약했다.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이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노력 의지가 더 커진다"고 말했다.
MZ세대의 취미, '접근성' 좋아졌고 '성취감' 얻으려 해
박기수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 교수에 따르면 이전에 특정 분야 종사자나 연예인에게 국한됐던 활동들은 일반인들도 향유할 수 있게 변모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작가, 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은 연예인'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
이를 기록물로 남기려는 풍조에 대해서는 MZ세대가 '상호작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들어 설명했다.
박 교수는 "MZ세대는 자신의 삶을 남들과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 인터랙션, 즉 상호작용에 익숙하고 민감히 반응하는 세대"라며 "취미를 단순히 체험하는 것에는 만족하지 못한다. 이를 결과물로써 남기고 타인과 공유하려는 니즈가 강하게 발현한 것"이라 말했다.
이재흔 대학내일20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같은 MZ세대의 경향을 '성취감'과 연결지어 설명했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취미 활동을 결과물로 남기면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며 MZ세대들이 '내가 지금 보람차게 살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만족이 강하다는 의미다.
이 연구원은 "MZ세대들은 취미를 즐기거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SNS에 공유한다"며 "자신이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서 성취감을 얻기도 하는 것"이라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취미 활동의 확장성은 '기록 남기기'가 쉬워진 시대 배경도 한 몫했다는 평가다.
그는 "최근 굿즈나 독립 출판에 대한 강의와 온라인 콘텐츠들이 많아졌다"며 "조금만 정보를 찾아보고 배우려고 노력하면 생각보다 쉽고 간단하게 (기록 활동에) 접근할 수 있다. 접근성이 좋아진 것 역시 큰 이유일 것"이라 설명했다.
/스냅타임 김세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