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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공직자의 사과

최은영 기자I 2020.07.28 05:00:00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변호사회장

조선시대에는 가마에 탄 정승이 지나갈 때면 거리에 있던 백성들이 감히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엎드려 절을 했다.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국가권력의 근원과 주체
는 국민이며, 오직 국민만이 국가의 정치적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 시대다. 따라서 공직자가 잘못을 저지르면 곧바로 국민에게 사과하거나 자리에서 물러난다. 비위가 크면 구속도 되고 재판도 받아야 한다. 올해만 놓고 봐도 성추행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오거돈은 부산시장 직을 사퇴했을 뿐만 아니라 재판을 눈앞에 두고 있고, 통합당은 총선을 눈앞에 두고 막말을 한 후보에 대해 가장 무거운 징계인 제명을 하기도 했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와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눈길을 끈다. 이들의 상반된 모습을 통해 바람직한 공직자상을 다시금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추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권을 발동한 이후인 지난 7일과 8일 연차 휴가를 내고 절에 다녀왔다. 그런데 당시 법무부 직원 2명이 휴가를 사용해서 동행했고, 연가임에도 관용차량을 이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장관 개인이 연차내고 절에 가는데 부하 직원들도 휴가를 내고 동행한다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도 있는 갑질이다. 더군다나 휴가 중에 사적 용무에 관용차를 사용한 것은 공무원행동강령 위반소지도 있다.(공무원은 관용 차량·선박·항공기 등 공용물과 예산의 사용으로 제공되는 항공 마일리지·적립 포인트 등 부가서비스를 정당한 사유 없이 사적인 용도로 사용·수익해서는 아니 된다.)

이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이상 응당 국민에게 사과하고 넘어가야 함에도 추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개혁을 바라는 민주시민에 맞서 검찰과 언론이 반개혁 동맹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관음증 보도에 힘을 보태는 진보신문 역시나 법조출입기자다. 절독해야겠다”고 적었다. 국민에게 사과는커녕 언론에 책임을 묻고 있다. 의아한 반응이었다. 만약 사기업의 대표가 자신의 휴가에 직원을 (그것도 직원의 휴가 일수를 사용하게 해서) 동반한 것이 알려졌다면 그 기업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반면 지난 18일 권준욱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부본부장의 사과는 국민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방대본은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국민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은 기관이다. 그런 방대본이 코로나19 사태 초기 특정한 상황에서만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던 당시 발언에 대해 사과를 했다.

권 부본부장의 발표처럼 초기 마스크 착용과 관련한 혼선은 코로나19를 잘 알지 못하던 시기에 세계보건기구(WHO)나 각국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어쩌면 당국자가 책임져야 할 사항이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점을 사과했다. 그리고 “코로나 관련 마지막 브리핑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국민에게 신뢰받는 공직자나 정치인, 기관이나 단체가 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의 이해와 욕구에 충족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대본처럼 진정성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도 (외부의 비판이 없이도) 스스로 깨닫고 사과하는 기관이라면 어떤 국민이 신뢰와 응원을 보내지 않겠는가. 만일 추 장관이 제기된 문제에 대해 잘못을 빨리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논란은 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지도 모른다.

비단 공직자와 정치인만이 아니라도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다만 공직자와 정치인은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존재이니만큼 행위와 발언에 더 큰 책임을 묻게 된다. 비판을 받으면 추 장관처럼 자신을 공격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판은 그의 정적이 잘못도 없는 그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국민이 그의 잘못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된 행동이고, 발언이었는지 되새겨 보고 즉시 사과해야 한다. 지금은 왕조시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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