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유지·이익공유' 깐깐한 조건이 변수‥재계 "골든타임 놓칠수도"

장순원 기자I 2020.04.23 05:24:00

기간산업에 ''40조'' 투입…넘어야할 산
"명확한 기준 없고 자율성 침해 우려"
기금 설치·운영 위해 국회 동의 필수
"신속한 집행 못하면 40조 무용지물"

[이데일리 장순원 송승현 기자] 정부가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조성하기로 결정한 배경은 결국 코로나19가 촉발한 경제위기가 한국의 주력산업을 흔들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기간산업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버리면 경제의 회복 동력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기간사업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대규모 지원을 통해 실직사태는 막겠다는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 미국이나 유럽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항공·조선·자동차 등 7대 기간산업에 지원

애초 시장에서는 정부가 2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만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정부는 규모는 40조원 규모로 키웠다. ‘충분한 규모’의 돈을 마련해두고 위기에 대비하려는 취지다. 재원은 국가가 보증하는 기금채권이다. 여기에 민간펀드나 특수목적기구(SPV) 출자를 통해 민간자금을 더 유치할 방침이다. 위기대응 수단인 만큼 5년간 한시 운영된다.

지원대상은 항공, 해운, 조선, 자동차, 일반기계, 전력, 통신을 포함한 7대 기간 산업이다. 고용과 국민경제에 영향을 고려해 추렸다. 해당 기업 가운데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거나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신청하면 정부가 심사한 뒤 지원하는 구조다.

산업 특성과 개별 기업 수요에 맞춰 대출이나 지급보증, 출자 등 지원 방식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리스비용 탓에 부채비율이 높은 항공사의 경우 기금이 자본형태로 지원하면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다. 민간자금과 노하우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펀드나 SPV에 대한 출자나 신용 공여를 허용하기로 했다.

국민의 세금이 지원되는 만큼 깐깐한 조건이 붙는다. 대기업 지원에 대한 특혜 논란을 피하고 도덕적 해이도 막기 위해서다.

먼저 일정한 자구노력이 기본 전제로 깔린다. 여기에 고용안정 요건이 붙는다. 기금의 지원을 받으면 6개월 이상 일정비율 이상의 고용 총량을 유지해야 한다.

기업이 정상궤도에 오르면 이익도 공유해야 한다. 가령 총 지원금액의 15~20%를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같은 주식연계증권이나 우선주 등으로 받고, 전환가액은 지원시점 직전 3개월 평균 주가로 설정하는 방식이다. 해외에서도 항공업 등에 대한 자금 지원을 하면서 대출금액의 일정부분을 주식연계증권으로 취득해 이익을 공유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임직원 보수도 제한되고 배당이나 자사주취득도 제한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원받은 기업이 정상화하면 주가가 올라갈 텐데, 정부가 보유한 주식을 팔아 차익은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라며 “일부에서 걱정하는 국유화와는 관계 없다”고 강조했다.

홍남기(가운데)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 결과 브리핑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홍 부총리, 은성수 금융위원장.(사진=이영훈 기자)
산은법 개정 등 국회 동의 필요

관건은 시간이다. 과연 자금 지원이 필요한 기업의 골든타임을 맞출 수 있느냐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설치하려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산업은행법을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기금채권에 대한 국가보증 절차도 필요하다. 정부는 최대한 절차를 서두른다는 방침이지만, 국회 통과부터 난관이다. 총선이 끝나 20대 국회는 동력을 잃었고 21대 국회가 가동되려면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총선에서 패한 야당이 정부 정책에 협조적으로 나올지도 불확실하다. 국회 논의과정에 지연된다면 지원이 다급한 기업 입장에서는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까다로운 요건도 걸림돌이다. 자구노력, 이익공유 같은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자금지원에 나설 기업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것이다. 자칫 기금의 지원이 시장에서 자금을 구할 수 없는 ‘주홍글씨’가 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재계 “환영하지만 과도한 조건은 부담”

재계는 일단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간 코로나19 관련 지원정책이 중소·영세기업에 초점이 맞춰졌는데, 산업 연관 효과가 큰 기간산업에도 대규모 정책 자금이 투입된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항공·자동차·정유 등 산업이 코로나19로 경영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말처럼 과연 신속한 집행이 이뤄질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또 지원을 받기 위한 자구노력의 수준을 결정하는 부분도 혼란스럽다는 입장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업계 전체가 코로나19로 인해 휴직에 들어간 상황인데, 더 강도 높은 자구책으로 뭘 내놔야할지 모르겠다”면서 “5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유동성 위기에 처할 텐데 약속한 대로 신속한 집행이 이뤄질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면 기업의 자율경영이 훼손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왔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익공유차원에서 주식 전환으로 대신 상환하는 것이 과도해지면 추후 기업 자율경영 측면에서 우려가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익공유에는 이견이 없지만 앞으로도 기업의 자율 경영이 침해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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