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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처는 저돌적인 인물이었다. 신참 평검사 시절부터 겁 없이 마피아 조직범죄 수사에 매진했다. 1990년대초 뉴욕 의류업계를 지배하던 감비노 패밀리 수사를 맡은 그는 직접 옷 만드는 공장을 세워 운영하며 감비노 패밀리를 살폈다. 그리고 함정수사 기법까지 총동원해 증거를 확보한 뒤 그들을 기소했다. 이후 감비노 가문이 스스로 유죄를 인정하게 한 뒤 벌금을 물고 의류업계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도록 합의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피처는 월가 금융회사들의 비리를 밝히는데 앞장섰다.
스피처 검찰총장 당시 뉴욕주와 매우 유사한 상황이 10여년이 흐른 현재 국내에서 재현되고 있다.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의 등장 때문이다. `강골검사`, `칼잡이`, `저승사자` 등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진 그는 취임 일성부터 “공정한 경쟁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 고위급 인사에서도 사법연수원 동기인 배성범 광주지검장을 검찰 기업 수사의 중추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힌 것은 물론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에 오른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 등 이른바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특수 검사들을 대거 승진 기용했다. 향후 검찰이 대기업들을 겨냥해 서슬 퍼른 수사의 칼날을 휘두르는 사정 한파를 누구나 예상하는 이유다.
그러나 윤 총장은 달라져야할 때다. 누구보다 엄중한 수사를 했던 스피처였지만 임기 중 단 한 명의 월가 경영진도 감옥에 보내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는 “법은 다이나믹한 존재라 변화하는 경제적 현실과 바뀌는 사회적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총장 역시 지난 2006년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비자금을 헤집던 평검사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케미칼 수사를 지휘하던 서울중앙지검장도 아니다. `강골검사`외에도 그는 `칼잡이`나 `저승사자`로도 불렸다. 강직하면서 과감하고 거칠 것 없다는 호의적인 평가는 물론이고 때론 다소 무리수를 두면서도 거친 수사 방식을 선호한다는 비판적인 시각까지 담긴 수식어다. 무차별한 압수수색과 이어지는 별건수사, 여론 떠보기식 피의사실 공표 등은 대한민국 검찰의 수장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재계는 현 정권 3년간 이어져온 강도 높은 기업 수사에 따른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무리하게 전 정권의 적폐와 연계시켜 온 대기업 수사나 행정조치와 별개로 기소 일변도로 대응해온 공정거래 관련 재계 수사 등을 조기에 마무리할 수 있는 사람은 검찰총장뿐이다. 기업들이 경영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일본의 보복무역조치, 경기 둔화 등 엄중한 경제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가 취임사에서 24차례나 강조했다고 하는 `국민`을 위한 일과도 결코 배치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