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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남이나 다른 기업의 아이디어나 특허를 침해하더라도 약간의 돈만 지불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국내 풍토를 바꾸겠습니다. 지식재산에 대해 확실히 보호해주지 않는 국가에서는 아무도 특허를 출원하지 않습니다.”
박원주(55) 특허청장은 지난 10일 정부대전청사 특허청장 집무실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오는 7월부터 시행할 계획인 특허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취지와 도입 필요성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특허법에 명시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특허권 침해 사안에 대해 고의가 입증된다면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법원 판단 기준도 상당 부분 변경될 것으로 보인다.
박 청장은 “그간 법조계 관행은 손해액 산정과정에서 특허권을 갖고 있는 사람의 기회비용만 간주하다 보니 개인이나 중소기업의 특허를 침해하더라도 시장점유율 등을 고려해 큰 금액이 나올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면서 “결국 대기업이 중소기업이나 개인의 특허를 침해한 뒤 법원에 가더라도 돈 몇푼 주고 끝낼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이 현실이었다”고 진단했다.
◇“기업들, 지식재산을 보호해주는 국가에서만 특허출원 진행”
특허청은 지난 수년간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골자로 한 특허법 개정을 건의했고 마침내 지난해 국회 문턱을 통과하는 성과를 거뒀다. 박 청장은 “손해액 산정과정에서 특허를 침해한 가해자의 수익 전체를 모수로 정해 최대 3배까지 물릴 수 있어 국내에서 불법적인 특허 침해 사범에 대해 응분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길이 드디어 열렸다”며 “우리나라의 지식재산 시장을 키우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 근거로는 “우리 기업의 해외 특허출원 사례를 조사해보니 미국이나 유럽 등 지식재산을 확실히 보호해주는 국가에서만 특허출원이 이뤄졌다”며 “지식재산에 대한 보호가 선행되지 않으면 그 누구도 특허를 출원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국민 1인당 특허출원 건수는 우리나라가 세계 1위지만 이런 성과는 지식재산에 대한 철저한 보호를 통해 유지될 수 있는 것으로 정부가 이를 보호해주지 않으면 쉽게 허물어 질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이미 늦은 감도 없진 않지만 국회 등 정치권에서 특허 보호를 강화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지식재산이 제값을 받고 활용되는 시장을 조성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징벌적 손해 배상제도와 별개로 “상표법·디자인보호법 등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허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현실화할 수 있도록 침해자의 이익 전액을 권리자에게 반환토록 하고 입증책임을 침해자에게 전환하는 제도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에 특허청은 특허·디자인·영업비밀 분야에 대한 특별사법경찰을 출범하고 수사인력·전담조직을 확보하는 등 수사의 전문성도 높인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내용은 올해 특허청 주요 업무계획에 포함돼 있다. 박 청장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특허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과거 노동집약적 시장에서는 가격만 싸면 팔리는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국내와 해외에서 특허권을 확보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조언했다.
이어 “우리가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신남방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이 이들 국가에서 출원한 특허는 일본보다 적다. 일본이 동남아를 신성장 동력으로 보고 철저히 준비했다는 점에서 우리가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 뒤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기에 앞서 해외 특허권을 확보하는 등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우리 산업계가 가격·품질경쟁에서 탈피, 지식재산 권리화로 가야”
박 청장은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 진출, 성공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론도 명확히 짚었다.
그는 “우리나라는 세계 5대 특허강국이다.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통하기 위해서는 기업은 물론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우리 기업이 진출했거나 진출 예정인 국가의 특허권 제도가 미비하다면 인프라 구축을 도와주고 그 대가로 한국의 특허권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특허청의 선도적 역할을 강조했다.
박 청장은 “그동안 우리는 중동 국가 중 UAE와 사우디 등에서 특허 인프라를 구축했고 이 과정에서 협업을 통해 이들 국가가 한국과 유사한 특허정책 철학을 지닐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우리 기업들이 이들 국가에서의 지식재산권 확보에 유리할 것”이라며 “앞으로 정부는 특허외교가 중요한 과제로 새로운 특허통상 전략을 수립할 때”라고 말했다. 이는 산업계가 가격과 품질 경쟁에서 탈피해 지식재산에 대한 권리화가 유일한 경쟁력이라는 국정방향과도 일치한다. 또 우리나라 연구개발 관행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박 청장은 “각 정부출연 연구기관들과 기업들의 연구개발(R&D) 부서에서 어떤 분야에 어떤 방식으로 연구개발이 진행 중인지 그동안 아무도 알 수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면서 “연구개발 이전에 특허 권리화 가능성을 진단할 수 있도록 특허청의 빅데이터와 전문인력을 활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
강한 특허를 창출하기 위한 해법과 관련해서는 “현재 특허청 심사관들은 연간 200건이 넘는 특허출원을 담당한다”며 “이는 특허의 질이 떨어지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산업계와도 소통을 하지 못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박 청장은 “심사관 1인이 처리하는 특허출원 물량을 줄여야 한다”며 “심사관들은 살아있는 산업계와 호흡해야 하며, 심도 있는 심사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줘야 한다”고 단언했다.
이어 “4차산업혁명의 가장 큰 특징은 업종간 융합이다. 정보통신(ICT)과 기계, 화학, 생명공학 등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모여 상시 융복합 심사체제를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1등만이 살아남는 구조속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특허청이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겠다”고 밝혔다.
◆박원주 특허청장은
△1964년 전남 영암 △1987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90년 서울대 정책학 석사 △1997년 미국 인디애나대 경제학 박사 △2012년 지식경제부 산업경제실 산업경제정책관 △2014년 산업부 대변인 △2015년 산업부 기획조정실장 △2016년 산업부 산업정책실장 △2016년 대통령비서실 산업통상자원비서관 △2017년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 △2018년 9월 제26대 특허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