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미국 재무부가 주요 교역상대국의 외환정책에 대해 평가하는 연례 환율보고서 발표가 이달중 예정된 가운데 한국이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하는 대신 미국 기업에 대한 시장 추가 개방과 미국산(産) 제품 수입 확대 등을 양보하는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 투자은행(IB)인 캐피탈이코노믹스의 가레스 레더 아시아담당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1일(현지시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한국과 타이완, 중국 등 아시아 3개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에 대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가 지난해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를 가늠하기 위해 채택한 3가지 기준은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200억달러 이상이면서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국내총생산(GDP)대비 3% 이상이고 △연간 GDP대비 2% 이상 다른 나라 통화를 매입함으로써 자국 통화가치를 절하시킨 경우다.
|
레더 이코노미스트는 “물론 현 상태로선 이 세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아시아 국가는 하나도 없으며 지난해 환율조작 감시대상국에 올랐던 한국이 이중 2개 기준을 충족시키고 있고 타이완과 중국은 각각 하나의 기준에 해당되는 정도”라고 설명하면서도 “미국이 환율조작국에 지정하느냐 여부는 경제적 판단보다는 정치적 판단을 훨씬 더 요하는 사안인 만큼 이 기준만으로 단정하긴 이르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재무부가 이 3가지 기준을 조정할 것인지 여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자 한다면 기준을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그는 “미 재무부와 해당 국가 정부간 외환정책에 관한 협의가 어떻게 진행되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수년간 미국은 중국과 위안화 문제를 논의해왔지만 그로 인해 중국 외환정책이 크게 달라졌다는 증거는 거의 없는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려는 건 이런 협의보다는 보다 실질적인 경제적 이득을 얻고자 하는 것”이라고 점쳤다.
실제 과거 미국 재무부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나라는 모두 3개였다. 1988년 한국과 타이완, 1992년 타이완, 그리고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중국이었다. 이 때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나라들은 해제를 위해 미국이 요구하는 일정 부분의 양보조치를 했다. 한국과 타이완은 자본계정 자유화에 합의했고 이후 두 나라 통화가치는 절상됐다. 외환보유고 증가속도도 둔화됐고 미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규모도 다소 줄었다. 중국도 환율조작국 지정 이후 자신들의 이중환율시스템을 단일화했고 기업들이 무역거래에서 외환을 비교적 자유롭게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도 내놓았다. 다만 이런 조치 이후에도 중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계속 늘어만 갔다.
|
레더 이코노미스트는 “양국간 협의에서 미국이 어떤 노선을 취할지는 불확실하다”면서도 “과거에는 주로 외환시장 개입을 줄이라는 압박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그런 접근법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과 타이완의 경우 작년까지도 외환보유고가 늘어났고 중국은 적극적으로 시장 개입을 하고 있지만 위안화 절상을 막겠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절하를 막겠다는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레더 이코노미스트는 “이제 협의의 핵심은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맞춰질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 타이완이라는 핵심적인 동맹국이자 미국 무역수지 적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국가들과 굳이 무역전쟁을 벌여봐야 경제적 이득이 크지 않을 것인 만큼 가장 가능성있는 시나리오는 한국과 타이완이 자발적으로 미국 기업에 대해 자국 시장을 더 개방하도록 합의하고 미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을 늘리는 조치를 발표하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중국과의 협의는 좀더 복잡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6~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직접적인 대치를 피하려할 것이지만 중국으로서도 환율조작국 지정에서 완전히 면제된다는 확약 없이는 어떠한 것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며 “양국간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면 상황은 악화될 수 있으며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자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여부 자체보다는 미국과 중국간 양자간 논쟁이 격화되면서 개방된 국제 무역질서가 흔들리는 상황까지 가는 것이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