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의 생각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그런데 마냥 개인적이라고 하기도 또 어려운 것 같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 27일 국회에서 이례적으로 강연했을 때, A씨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이 총재는 최근 유독 재정정책과 구조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한은의 통화정책만으로는 우리 경제의 돌파구를 열기 어려우니, 정부와 국회도 함께 뛰어달라는 당부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런 이 총재에게 국회 강연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국회의원은 예산심의권과 입법권을 가지고 있다. 재정정책과 구조개혁은 결국 국회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게다가 강연을 들었던 국회 재정경제연구포럼 인사 중 다수는 경제통이었다. 이 총재를 국회로 부른 이도 재정경제부 차관 출신 김광림 새누리당 의원(3선)과 기획예산처 장관 출신 장병완 국민의당 의원(3선)이었으며, 이날 사회도 국무조정실장 출신 추경호 새누리당 의원(초선)이 봤다. 이 총재는 마음먹기에 따라 속 깊은 대화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또 원론만 반복했다. 마지못해 장병완 의원이 한 마디 했다고 한다. “(이 총재께서) 구조개혁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국회에서는 어떤 걸 유념해야 할지 말할 줄 알았는데 언더스테이트(understate·삼가서 말하다) 해서 아쉬웠습니다. 오늘처럼 하면 해법이 나오지 않아요.” 장 의원은 앞으로 이 총재의 말을 더 가볍게 들을지도 모른다. 이래서는 맞는 얘기를 해도 누구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사례는 적지 않다. 지난 14일 한은이 연 물가안정목표제 운영상황 설명회도 ‘책임 방기’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한은은 당시 저물가 책임론이 떠오르는 걸 불편하게 여겼다. 그러나 한은 한 금융통화위원은 “총재께 물가 설명을 적극적으로 하셔야 한다고 말했는데, 결과적으로 상당히 아쉽다”면서 “책임을 더 강조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요즘 한은의 책임이란 건 뭔지 생각해본다. 한은맨들은 “우리는 힘이 없다”고 하지만, 한은만큼 처우가 좋은 곳이 있는가. 생각해보라. 한은 총재만큼 임기가 보장된 임명직이 있는가. 언제 짐을 싸야 할지 모르는 장관과는 차원이 다르다. 국민들이 한은에 준 힘은 생각 이상으로 클 수 있는 것이다.
고위인사 A씨는 “한은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면서 “실력으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혹여 ‘백면서생(白面書生·희고 고운 얼굴로 글만 읽는 사람)’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한은맨들이 이를 새겨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