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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자식을 낳기 전 내 지론은 ‘양육의 책임은 부모가 정확히 반반씩 나눠지는 것’이었다. 둘이 함께 만들었으니 책임도 같이 지고, 부모 중 누구라도 상대방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밤에 아이가 자다 깨서 울면 반사적으로 나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분명 남편이 같이 자고 있는데도 늘 새벽에 일어나 아이를 돌보는건 내 몫이었다. 서너번을 뒤척이다 아침이 되면 나 혼자만 잠을 설친게 억울해 ‘밤에 애 우는 소리 못들었어?’라며 괜시리 남편에게 쏘아붙였다.
아이가 먹을 삼시세끼 고민은 왜 엄마인 내 머릿속에만 있어야 하는지, 주말 아침에 아이와 함께 기상하는 사람은 왜 항상 나인지도 의문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똑같아야 하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엄마가 늘 조금씩 더 희생해야 했다.
이 모든건 아빠가 아이를 보는 게 익숙지 않아서라고만 생각해 애꿎은 남편만 닥달했다. 그런데 아이가 20개월이 돼가는 지금,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대신할 수 없는 고유의 역할이 있다는걸 조금씩 느끼고 있다.
요즘 아이는 엄마밖에 모르는 ‘엄마순이’다. 특히 먹을 때나 잘 때 등 생존(?)이 달린 문제에선 늘 엄마를 찾는다. 예를 들어 자다 깨면 눈을 감은 채 주변을 더듬거리며 엄마를 찾는다. 만약 그 때 엄마가 옆에 없으면 눈을 번쩍 뜨고 ‘엄마~’를 부르면서 울기 시작한다. 아빠가 옆에서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다. 엄마가 등장해 ‘엄마 여기있어!’라고 안심시켜줘야만 안정을 찾고 다시 잠에 든다.
평일엔 하루 중 아이를 보는 시간이 저녁시간 서너시간 뿐이다. 할머니와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도 퇴근 후 엄마가 돌아오면 아이는 그때부터 엄마 껌딱지가 된다. 밥을 먹을 때도 할머니가 주려고 하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엄마! 엄마!’라고 외친다. 엄마더러 달라는 거다. 어쩔 땐 그 정도가 심해 어머님이 서운해하실까 눈치가 보일 정도다.
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은 “아이에게 아빠는 놀이의 대상이고 엄마는 양육자이자 보호자다”라고 말했다. 10개월을 뱃속에서 나와 한 몸으로 지냈기 때문일까. 아빠와 신나게 놀다가도 눈비비며 졸릴 땐 엄마 손을 잡아끄는건 태생부터 다른 엄마와 아빠의 차이인가보다.
어쩌면 아이를 배에 품는 순간부터 내 몸은 이미 누구보다 더 많은 희생을 해야하는 존재가 ‘엄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내 머리가 인정하고싶지 않았던 것 뿐이다.
엄마만 옆에 있으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졌다는 듯 의기양양해지는 아이를 보며 오늘도 직장에서 돌아온 나는 마음을 다잡고 ‘엄마’가 되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