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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더스토리’(INDUSTORY)
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정치·문화·기술·경제 등 복합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기른다.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된 ‘철(鐵)’과 ‘사(沙·모래)’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약(藥)’, ‘의(醫)’까지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다룬다.
☆ 임규태 공학자·교육자·기업가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 국제 통신표준화 의장. 빅데이터·소프트웨어·게임·블록체인·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참여.
모래의 주성분인 규소(실리콘·Si)는 지각의 27.7%를 차지하는, 산소 다음으로 흔한 물질이다. 산소와 달리 산업재로 쓰이는 것이 특징으로, 세상에서 가장 값싼 산업재이기도 하다.
규소가 보유한 전자는 14개. 이 중 가장 바깥쪽 4개는 다른 원자와 화학 결합을 용이하게 한다. 규소로 만들어진 화합물은 방수성, 탄력성, 화학 반응에 대한 저항성이 강해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우리 생활과 밀접한 건물, 전자기기, 인체 보형물 등도 규소가 있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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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로 태어난 산업재가 없었다면 우리 일상은 얼마나 큰 불편을 겪었을까. 임 박사는 그 단적인 예로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하 두오모)을 꼽았다. 1296년 첫 삽을 떠 약 140년에 걸쳐 완공된 두오모는 건축으로 신앙심을 표현하려 했던 당시 피렌체인들의 걸작이다. 두우모는 이후 르네상스 건축 양식의 모태가 됐다.
피렌체인들은 로마 판테온 신전의 돔 형식을 두오모 성당에 이식해 자신들이 로마인들보다 신앙심과 기술 면에서 뛰어남을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성당의 마지막을 장식할 ‘돔’을 구현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매듭을 푼 것이 천재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다. 돔 건축을 위한 경연에서 우승을 한 브루넬레스키는 나무 틀을 짜고 그 위에 벽돌을 얹는 방식으로 돔을 완성했다. 돔 건설에 걸린 시간은 17년. 돔의 무게는 3만7000톤(t)에 달했고 사용된 벽돌만 400만개를 넘었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판테온 신전을 어렵게 짓지 않았다. 당시 로마인들은 시멘트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베수비오 화산 옆에 있는 작은 마을인 포졸리에서 구한 화산재로 시멘트를 만들어 사용했다. 임 박사는 “로마 제국이 동과 서로 갈라지며 시멘트 제조 기술은 잊혀졌다”라면서 “기술의 부재가 후대에 어떤 어려움을 안기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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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프랑스의 조경사 조셉 모니에르는 1855년 철근을 엮은 뒤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붓는 건축방법을 개발했다. 현대 건축 체계를 대표하는 ‘철근 콘크리트 공법’이 탄생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철근 콘크리트 공법이 완성된 것은 고작 18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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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편성의 승리로 끝난 반도체 전쟁
건축 산업을 180도 바꿔 놓은 규소는 미국 물리학자들과 만나면서 다시 한 번 세상을 뒤바꾼다. 1947년 미국 뉴저지에 위치한 벨 연구소에서 존 바딘, 윌리엄 쇼클리, 윌터 브랜튼이 트랜지스터를 개발한다. 트랜지스터는 전기의 흐름을 제어하고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반도체 소자다.
벨 연구소를 떠난 쇼클리는 캘리포니아에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세우고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본격적으로 반도체 개발에 들어간다. 그러나 벨 연구소 시절부터 인성 등에서 뒷말이 많았던 쇼클리였기에 그 휘하의 인재들도 짐을 싸 반도체 회사 ‘페어차일드’로 적을 옮겼다. 쇼클리는 이때 떠난 8명을 ‘8인의 배신자’라 부르며 죽을 때까지 비난했다고 한다.
8인의 배신자 중 한 명인 로버트 노이스는 1957년 평면 위에 회로를 프린팅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IC집적회로의 탄생이다. 작은 면적에 더 많은 회로들을 집약하는 기술이 탄생하면서 반도체 기술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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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노이스와 킬비의 기술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킬비는 게르마늄 기판에 회로를 만든 반면 노이스는 실리콘에 집적회로를 만들었던 것. 당시 대부분의 반도체 연구자들은 전기적 특성이 우수한 게르마늄을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노이스는 끝까지 실리콘을 고집했다.
결국 산업이 발전할수록 실리콘, 즉 규소가 가진 보편성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보편성이 성능을 압도한 셈이다.
임 박사는 “킬비의 의도대로 게르마늄을 기반으로 반도체 산업이 발전했다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은 없었을 것”이라며 “결국 기술이란 성능 뿐 아니라 보편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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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실리콘밸리’인가
노이스는 훗날 무어의 법칙을 만든 동료 고든 무어와 함께 실리콘으로 만드는 범용 반도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페어차일드를 떠나 새로운 반도체 회사를 설립한다. 바로 ‘반도체 공룡’이라 불리는 ‘인텔’이다. 인텔은 고성능 메모리를 생산해 큰 성공을 거뒀으며, 이후 메모리 분야를 일본에 넘기고 자신들은 마이크로 프로세서와 중앙처리장치(CPU) 개발에 집중해 지금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이끌고 있다.
임 박사는 미국의 IT 산업단지인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이 붙게 되는 계기를 되짚었다. 실리콘밸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남쪽, 특히 샌프란시스코 만의 남쪽 끝 산호세부터 북쪽으로 레드우드 시티까지의 도시들인 산타클라라, 서니베일, 쿠퍼티노, 마운틴뷰, 팔로 알토, 멘로파크를 아우른다.
현재 실리콘밸리의 시작은 컴퓨터 기기 제조회사 휴렛팩커드(HP)로 보고 있다. 1989년 캘리포니아 주는 HP가 탄생한 에디슨가 367번지의 허름한 차고를 ‘실리콘밸리의 발생지(The Birthplace of Silicon Valley)’로 명명했다.
하지만 임 박사의 시각은 달랐다. 실리콘밸리라는 명칭은 실리콘 반도체 혁명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그는 “실리콘을 이용해 세상을 바꾼 것은 노이스와 무어 등이 창업한 인텔”이라며 “실리콘밸리의 이름이 나온 계기는 노이스가 실리콘을 선택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