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밀양화재 벌써 잊었나…국립소방연구원 `반쪽` 출범 위기

송이라 기자I 2019.01.07 06:15:00

재난유형 복합화·대형화…소방 전문 연구원 無
기재부에 예산협의 요청한 지 6개월…예산·조직 절반 허용
"국민생명 직결 소방안전 R&D 시급…민관 협력역할 연구원 필요"

[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2017년 말과 지난해 초 제천과 밀양에서 잇달아 발생한 대형 화재를 계기로 참사급의 재난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겠다며 정부가 야심차게 설립을 추진해 온 국립소방연구원이 반쪽짜리로 출범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건물 노후화 등 재난 유형이 복잡해지고 피해도 커지면서 다양한 기초연구가 필요한데도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컸다는 건 그만큼 소방 안전과 관련된 공직사회 내 위기의식이 높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7일 행정안전부와 소방청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행안부는 현재 중앙소방학교 내 과(科) 단위로 운영하고 있는 소방과학연구실을 독립 연구원으로 분리해 정원 50명의 소방청 산하 1급 소속기관인 가칭 국립소방과학연구원을 신설키로 하고 기획재정부에 예산 협의를 요청했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부처간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기재부가 절반 수준의 인력과 예산만을 허용해 주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독립 연구원이 하나 만들어지면 매년 수백억원의 재원이 투입된다”며 “자체 연구용역 결과 소방분야는 다른 연구개발(R&D) 대비 규모가 작아 단계적으로 시작하자는 뜻을 행안부에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행안부의 입장은 다르다. 지난 제천·밀양 화재로 인해 재난 초기 대응정책의 필요성이 커진데다 현장지휘·훈련시스템 개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춘 드론과 가상현실(VR) 등 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소방기술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절실하지만 기재부가 허용하기로 한 인력과 조직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 특히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신년사에서 “과거 성장기에 많은 건축물과 도시기반시설을 압축적으로 건설했지만 30~40년된 건축물, 시설물에는 국민 안전에 치명적 위험인자들이 자리잡고 있다”며 “구조적 해결책을 강구해 올해를 안전 대개조의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 지난해 발생한 고양 저유소 폭발, 온수관 파열 등 사회기반시설 안전사고가 잇따르면서 체계적인 원인 분석과 대응정책 마련의 필요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사고가 발생한 후 현장 중심의 사후대책이 아닌 통계·계량적 연구 기반의 소방대응 체계를 위해서 소방과학연구원은 필수적이란 뜻이다.

전문가들은 국민 생명과 직결된 소방과학연구원 설립이 필요하되 단순히 공무원 숫자 늘리기에 급급한 공적 연구기관이 아닌 민·관의 기술과 연구를 공유하고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고작 25명의 인력과 예산으로는 실효성 있는 연구원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사후적 현장 대응에 급급한 현 체계에서 나아가 `수치화되지 않는 건 관리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증거 기반의 정책 연구를 하고 이를 통해 부처간·업계간 정보 공유와 기술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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