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국내 대기업 대표이사를 지낸 한 관계자는 “롯데의 위기가 신세계에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재벌기업은 총수가 수의를 입는 순간 모든 신사업이 ‘올스톱’ 된다. 기회를 틈타 (신세계가) 반격을 준비한다면 업계 판도가 흔들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영어(囹圄)의 몸이 되면서, 국내 유통업계를 선두에서 이끌던 롯데의 입지가 위태로워졌다. 롯데의 국내외 신사업을 직접 챙겨온 신 회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업계 2인자인 신세계는 정용진 부회장 지휘 아래 온·오프라인 신사업의 고삐를 바짝 죄는 모습이다.
◇온라인 공 들이던 롯데·신세계…극과 극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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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신 회장이 주도하던 옴니채널(Omni-Channel, 온·오프라인 결합형 유통 플랫폼) 구축 작업에 속도를 내기 어려워졌다. 신 회장은 지난 2014년부터 거듭 ‘온라인 사업 혁신’을 강조해왔다. 그는 지난해 경영권 분쟁 중에도 그룹 임원진에게 “2020년에는 온라인 주문 비중이 전체의 70%에 이를 것”이라며 온라인 사업 강화안 마련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이 올해 인사에서 롯데닷컴의 설립을 주도한 김경호 롯데닷컴 영업본부장을 롯데닷컴의 대표로 승진시킨 것도 온라인 사업 확장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롯데가 올해 엘롯데, 롯데아이몰, 롯데마트몰 등 5개 사이트의 모듈을 통합하기로 결정한 것도 옴니채널 강화를 위해서다.
그러나 신 회장이 구속되면서 향후 이커머스 사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총수가 언제 경영에 복귀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인수합병(M&A)이나 대규모 투자 등은 어렵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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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신동빈 부재에 신사업 올스톱…정용진은 ‘광폭 행보’
업계에서는 국내 유통시장에서 차지하는 이커머스 비율이 아직 작은 만큼, 신세계의 대규모 투자공세가 당장 롯데를 위협할 정도에 이르진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문제는 롯데마트를 비롯한 오프라인몰 사업이다. 신 회장은 구속 전까지 △중국 롯데마트 매각 △베트남 ‘에코스마트시티’ 사업 등 그룹의 굵직한 현안을 직접 챙겼다. 신 회장은 현지 인맥과 네트워크를 앞세워 롯데의 해외사업을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에코스마트시티’의 경우 신 회장의 야심작으로 꼽혔다. 호찌민시에 백화점과 쇼핑몰 등 상업시설과 호텔, 오피스, 아파트 등을 조성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총 사업비만 약 2조원에 달한다. 롯데는 지난해 에코스마트시티 조성을 전담하는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착공에 들어간다. 신 회장은 설 연휴 이후 베트남 사업장을 점검하기 위해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구속되면서 계획이 무산됐다.
반면 신세계는 정 부회장 주도로 국내외 오프라인몰 사업에도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정 부회장은 지난 1월 13~17일 베트남에 머물며 이마트 고밥점을 방문해 현지 사업 확장 가능성을 점검한 데 이어, 설 연휴 기간에는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현재 정 부회장은 해외 유명 유통매장을 벤치마킹한 잡화매장을 선보이기 그룹 실무진들과 새 유통매장에 들여놓을 제품을 직접 선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재계 순위 5위인 롯데와 11위인 신세계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유통만 놓고 보더라도 매출에서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며 “그러나 유통 시장이 성장정체기에 접어든 상황이라, 앞으로 내놓는 신사업의 성패에 따라 순위는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 시장을 읽고 빠르게 판단하는 오너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