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스케치를 위해 찾은 서울 서초구 반포고 앞에는 롱패딩·목도리 등으로 중무장한 학생들이 수험생인 선배들을 응원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모여 있었다.
‘대박 나서 서울대 가라’ ‘네 답이 정답’ 등 재기발랄한 격려의 글을 담은 플래카드들이 눈에 띄었다. 일본에서 대학을 나와 수능과 얽힌 특별한 추억이 없는 터라 이런 광경이 조금은 생소했지만, TV뉴스에서만 보던 모습에 기분이 살짝 들뜨기도 했다.
하지만 꽹과리나 북 등 익숙한 응원 도구는 보이지 않았고 고사장 앞엔 영동고 학생들 수십 명뿐이어서 기대(?)와 달리 응원전은 조금 밋밋했다. 핫팩과 학원 전단지를 돌리러 나온 아주머니들이 되레 당황할 정도였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본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인근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항의해 학교 측에서 미리 응원을 자제해 달라고 했던 모양”이라고 귀띔했다. 가뜩이나 매서운 추위에 고사장 앞 분위기는 더욱 썰렁했다.
꼭두새벽부터 요란한 응원 소리가 성가실 수 있다. 하지만 수험생 선배들의 건승을 빌고 후배들의 응원에 힘입어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지는, 일 년에 단 하루 볼 수 있는 훈훈한 풍경이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에서 ‘수능’이란 두 글자가 갖는 무게를 생각한다면, 오로지 이날을 위해 견뎌온 수험생들을 위해 조금 아량을 베풀어도 되지 않을까. ‘소음 민원’을 낸 주민들의 자녀도 언젠가는 수험생이 되고 자신들은 수험생 학부모가 될 텐데 말이다.
요즘 들어 갈수록 우리 사회가 삭막해진다는 걸 느낀다.
카페에서 어린 아이 울음소리만 들려도 젊은 사람들은 눈썹부터 찌푸리고, 도서관에선 ‘딸깍’ 펜 누르는 소리마저 타박을 하곤 한다. 여유가 없다보니 배려하는 마음은 점점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지나치게 엄격하다. 이날 썰렁한 고사장 앞 풍경도 이런 삭막해진 우리 사회의 속살처럼 보였다.
오전 8시 40분 수능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교문 앞에 있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학부모로 보이는 2~3명만 남아 교문 앞을 지켰다.
“에잇, 공쳤네. 이거나 좀 받아가슈.” 정시 설명회 전단지를 한아름 안고 있던 한 아주머니는 남은 핫팩 몇 개를 기자에게 넘기고선 종종 걸음을 쳤다. 핫팩도 어느새 식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