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중개업소 수난시대] '3중고'에 폐업사태 오나

성문재 기자I 2017.08.25 05:35:00

거래 실종·경쟁자 증가·직거래 선호
공인중개사 5년간 5.7만명 증가
변호사도 부동산 중개업에 진출
8·2 대책에 매수심리 얼어붙고
재건축·재개발 거래 제한 타격

[이데일리 성문재 정다슬 기자] “15년 동안 중개업소를 운영했는데 정부 출범 100일도 안돼 이렇게 몰아치기식으로 연달아 규제가 나오며 단속까지 강화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매매거래가 아예 없어서 월 임대료 250만원을 내고 나면 적자입니다. 가을까지만 상황을 지켜 보고 특별한 변화가 없으면 문을 닫을 생각입니다.”(서울 강남구 개포동 S공인중개업소 대표)

“뜸하던 매매거래가 그나마 한두 건 정도 이뤄지니 별안간 정부 합동 단속이 들이닥쳐 거래장부를 모두 수거해 갔습니다. 도대체 장사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네요.”(서울 마포구 공덕동 D공인중개업소 관계자)

부동산 공인중개사가 대내외적 여건 악화에 신음하고 있다. 정부가 8·2 부동산 대책을 통해 투기세력으로 의심되는 다주택자에 대한 전방위적인 대출·세금 압박에 들어가면서 주택 매수 심리는 얼어붙고 거래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매년 1만명 이상의 공인중개사들이 시장에 쏟아지고 있지만 주택 거래량은 의미있는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어 같은 동료들과의 경쟁만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은 한정적인데 중개사는 매년 증가

24일 한국산업인력공단과 공인중개사협회 등에 따르면 최근 5년간 6만7429명의 신규 공인중개사가 배출됐다. 연평균 1만3500명 수준이다. 작년까지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최종 합격자 누적 인원이 38만2374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년 3% 이상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개업 중개업소 숫자는 2015년 9만개를 돌파한 데 이어 올해는 10만개(7월말 기준)를 넘어섰다.

그러나 주택 거래량은 오히려 최근 2년째 줄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2015년 61만1000건이 매매 거래됐지만 작년에는 46만8000건, 올해(상반기 기준)는 45만8000건으로 줄었다.

전·월세 거래시장도 의미있는 변화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2015년 상반기 84만8000건이 거래됐지만 작년엔 84만1000건으로 줄었고 올해 87만4000건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8·2 대책 이후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입주권 전매)가 제한되면서 해당 사업장 인근 중개업소들은 중개할 수 있는 물건이 사라진데다 정부는 도정법(도시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을 통해 재개발 사업장에서도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하는 조합에 대해 조합원 분양분도 전매를 제한하기로 한 만큼 앞으로 주택 거래 제한 지역이 확대될 전망이다.

◇중개시장 넘보는 변호사… 저가 수수료 위협

게다가 지금까지는 부동산 거래가 공인중개사만의 고유 영역으로 보호됐지만 앞으로는 변호사들의 시장 진입도 예상된다.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인 공승배 트러스트부동산 대표는 작년 초 ‘거래금액과 상관없이 법률 자문 수수료를 최대 99만원까지만 받겠다’며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들었다. 현행 공인중개 수수료 체계는 거래금액에 따른 일정비율을 받는 요율제가 적용된다. 9억원 이상 주택을 매매하면 최대 0.9% 내에서 협의해서 최종 수수료를 결정한다.

그러나 트러스트는 매매 거래금액이 2억5000만원(전·월세 3억원) 미만이면 45만원, 그 이상이면 99만원을 받는 정액제를 내세웠다. 만약 10억원 짜리 집을 매매할 때 공인중개사를 통하면 최대 900만원의 중개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트러스트에 맡기면 10분의 1 수준인 99만원만 내면 되는 셈이다.

공인중개사협회는 공 변호사가 공인중개 자격증 없이 사실상의 중개행위를 했다며 공 변호사를 고발하기도 했다. 현재 공인중개업법상 부동산 중개행위를 하려면 공인중개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지난해 11월 1심 재판에서 배심원들은 공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는 검찰의 항소심을 받아들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만약 대법원 판결까지 1심과 같다면 사실상 그동안 부동산 거래를 독점해왔던 공인중개사업의 장벽이 허물어지며 무한 경쟁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온라인 서비스 확산으로 비용 부담도 늘어

직방·다방 등 온라인 거래 서비스가 등장하고 온라인 카페를 통한 직거래 트렌드가 확산된 것도 공인중개사들에게는 커다란 위협이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 이상에 달하는 부동산 거래는 여전히 공인중개사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중개업계의 비용 부담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매달 수십만원의 광고비를 써서라도 온라인 거래 플랫폼에 자신의 물건을 소개하겠다는 중개인이 적지 않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자체적으로 ‘한방’이라는 서비스를 출시하며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있지만 다운로드 수 등에서 아직까지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직방이 1800만회, 다방이 1000만회인데 반해 한방은 아직 100만회에도 못 미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한방은 협회 소속 회원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매물을 40개씩 올릴 수 있다”며 “자체적으로 허위매물을 걸러내는 시스템을 가동하는 등 차별화를 통해 이용자수를 늘려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약갱신청구권제 등 정부 추가 대책에 촉각

8·2 대책 이후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세입자 보호 대책 내용도 중개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달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임대차 계약 갱신청구권의 단계적 제도화 추진을 예고한 바 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전월세 상한제와 함께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후보자 신분이던 지난달 차례로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은 세입자의 계약 갱신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다. 임대차 계약 2년이 지나더라도 세입자가 계약갱신을 요구하면 계약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2년마다 전월세 계약서를 써주고 수수료를 받았던 중개인로서는 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계약갱신청구권제 등 정부의 추가 대책 내용을 보고 협회 차원의 대응 방침을 정할 것”이라며 “회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