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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마크맨 일기]나는 마크한다, 고로 백블딴다

유태환 기자I 2017.04.29 06:50:34

각 후보 담당 마크맨, 주요 현장 업무 중 하나가 백블
하지만 마크맨도 정제 안 된 후보 목소리 듣기 쉽지 않아
마크맨과 후보 측, 일정 및 동선 등 문제로 백블 마찰도
지지율 높을수록 백블 적어…질문에 침묵했던 朴생각해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진행된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가 끝난 뒤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현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유태환 기자] “후보님, 관련해서 입장 좀 밝혀주시죠.”·“한 말씀만 부탁합니다.”

주요 대선 후보의 공식 일정이 끝나면 각 후보를 밀착 취재하는 전담 기자들(마크맨)의 이같은 외침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주요 현안에 대한 후보의 입장을 듣기 위해서인데 각 마크맨들의 중요한 현장 업무 중 하나인 ‘백블’이다.

공식기자회견이 아닌 자리에서 취재진과 질문·답변을 주고받는 것을 언론계에서는 ‘백블’(백브리핑)이라고 한다. 기존에는 취재원의 실명을 밝히지 않거나 촬영 없이 하는 비공식 인터뷰를 일컫는 용어였으나 최근에는 좀 더 포괄적으로 쓰인다.

◇마크맨도 정제되지 않은 후보 목소리 듣기 쉽지 않아서야

후보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취재하는 마크맨이지만 정작 마이크를 잡지 않은 후보의 육성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때문에 정제되지 않은 날것으로써 후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공식일정에서 후보가 마이크를 내려놓는 순간 일제히 후보에게 달려가곤 한다.

백블은 보통 후보 측과 현장 기자들 간에 어느 일정에서 어느 정도로 진행할지 조율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중요한 현안관련 문제가 발생했거나 후보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는 현장 기자들이 강력하게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공보팀과 수행팀이 후보 일정을 이유로 백블에 난색을 보일 경우엔 현장기자들과 기 싸움 혹은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마크맨들이 이동하는 후보를 따라가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요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난 27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방송기자클럽 토론회’ 일정 뒤 마크맨들이 보인 모습이 이런 유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문 후보는 지난 25일 토론회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와 ‘동성애’ 관련 공방을 벌인 뒤 며칠간 관련 현안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문 상태였다. 애초 문 후보 측은 토론회 다음날 성평등정책본부를 통해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이후 문 후보가 직접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입장을 표명 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지만 27일 오전까지 소식이 없었다. 27일 오전 토론회에서 애초 예정돼 있던 ‘차별금지’ 질문이 현장에서 빠진 게 결국 도화선이 됐다.

마크맨들은 토론 뒤 문 후보에게 달려갔고 차량 탑승 때까지 동성애 관련 입장표명과 답변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후보는 답을 하지 않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일부 마크맨들과 후보 측이 잠시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마크맨들과 후보 측 조율 하에 다음 일정에서 백블을 하기로 정했고 문 후보는 ‘동성애’와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2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정부추진위 주최 ‘통합정부, 무엇을 할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문 후보 측은 현장 마크맨들과 조율 끝에 이 행사 뒤 ‘동성애’ 관련 질문에 답하는 백블(백브리핑)을 진행했다. (사진=연합뉴스)
◇후보 간 백블 전략 다르다지만…질문에 침묵했던 朴 생각해야

지지율과 전략에 따라 각 후보가 임하는 백블 태도에도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때가 TV토론 뒤다. 동일한 상황에서 모든 마크맨들이 5당 후보에 질문을 한다. 일반적으로 지지율이 높은 후보는 짧게, 지지율이 낮은 후보는 보다 길게 백블에 임한다. 지지율이 높은 후보는 정제되지 않은 발언 탓에 괜히 구설에 오를 필요가 없고 지지율이 낮은 후보는 한 마디라도 더 언론에 노출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각 후보 측도 이같이 각자 대선 기간 전략이 있고 공보팀과 수행팀이 다음 일정에 늦지 않게 후보를 챙기는 것도 그들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몇 가지 장면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에도 일방적으로 담화문을 발표하고 기자들의 질의를 받지 않던 모습이다. 또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자신의 입장만 일방향으로 말하는 박 전 대통령 태도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다. 현재 유력 대선후보들은 당시 박 전 대통령 태도를 강력히 비판했다.

대한민국의 최고 통치자가 좀 더 가감 없이 질문에 노출됐다면 지금과 같은 정국으로까지 이어졌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선거운동을 하는 대선 후보 중 누군가 한 명이 다음 최고 통치자가 된다.

취재진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현장을 떠나기 일쑤였던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허심탄회하게 질문을 받을까. 일정은 더 바빠지고 경호상 이유로 인한 비공개 동선 때문에 취재진이 다가서기는 한층 어려워지지 않을까. 누군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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