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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1만8000원' 장그래는 월가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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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I 2015.03.25 06:42:00

금융위기 후 월스트리트 현실 꼬집어
신입 애널들 2년 밀착 취재
주당 100시간 일하고 사생활 없어
'2년 계약 정규직' 미래 불투명
…………………………………
영 머니
케빈 루스|416쪽|부키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우리는 1%다.” 99%의 공분을 샀던 이 외침은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나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월가 점령 운동’이 한창일 때였다. 한때 ‘성공’의 다른 말은 ‘월스트리트’였으니 이런 식으로 자부심을 꺼내놓고 싶은 이들도 있었을 거다. 비록 ‘몰지각한’이란 수식이 따랐을지언정.

어쨌든 그 배경을 좀 볼까. 월가맨이 되려면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 있단다. 호감형 외모에 세세한 것을 놓치지 않는 치밀함은 기본 중 기본. 주가가 눈앞에서 거꾸러지는 ‘멘붕’을 견딜 수 있는 멘탈과 함께 강인한 체력도 필요하다. 매일 20시간씩 3일은 버텨내고, 혹시 지난밤 과음을 했더라도 상사에게 제출할 보고서는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여기에 특별덕목이 하나 더 있으니 ‘엑셀 스프레드시트’를 다루는 테크닉. 키보드 위를 날아다니는 손놀림은 ‘능숙’ 정도가 아니라 ‘도사급’이어야 한단다.

그런데 이 ‘하늘을 찌르는 프라이드’가 지금까지 유효할까. 그 대답을 이제 막 월가에 입성한 신입 애널리스트들에게서 들었다. 맞다. 금융위기가 변수였다. 세상의 분노가 월가로 쏠린 이후 분위기는 싸해졌다. ‘20시간씩 3일’ 같은 근무시간, 일상은 없는 셈 치는 생활 패턴은 그대로인데, 정신력을 흔드는 우울까지 덮쳤으니. 나라를 파산으로 몰고 간 약탈적 금융회사의 일원이란 도덕적 비난이 그거란다. 야망을 가린 오욕, 성취보다 이른 회의가 그들의 대답이었다.

이런 예라면 이해가 쉽겠다. 대학졸업을 한 청년들이 친구집의 저녁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그중 한 명이 막 금융업계에 취직을 했다니 친구 부모가 궁금해하는 건 당연하지 않겠나. “무슨 회사니?” “그냥 시내에 있어요.” “투자은행이야?” “네….” “그러면 어떤?” 결국 그 친구는 고개를 떨구고 어렵게 회사이름을 ‘불었다’. “골드…만…삭스요.”

‘뉴욕타임스’ ‘타임’ 기자 등을 거친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2년여에 걸쳐 월가의 신입사원이 된 8명을 추적했다. 핵심은 이제 막 새내기가 된 미국 최고 엘리트와 거대 자본 사이에 놓인 욕망을 재는 데 뒀다. 스케치는 양 갈래가 됐다. 바뀐 지형의 월가, 그 길을 따라나설지 하차할지 갈등하는 신입. 발을 들이는 것만으로 출세의 보증수표가 됐던 월가는 더 이상 안온한 일터가 아니다. 덩달아 지구상 최고의 스펙이라는 신입의 위상도 흔들린다. 책은 이 둘의 간극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사다리를 저자가 직접 건너본 기록이다.

▲월스트리트, 예전의 월가가 아니다

금융위기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라면 옛 명성을 다 잃은 ‘힘빠진’ 월가를 보게 됐다는 거다. 고용안정성은 바닥을 쳤고 보너스는 줄었다. 그럼에도 월가의 꿈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젊은이들은 “특권이나 배경 없이도 성공을 쥘 수 있는” 꿈을 좇아 월가에 몸을 던진다.

도대체 ‘월가 입성’의 의미가 뭔가. 저자를 그대로 인용하면 “화려함과 자기학대의 기이한 조합체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우주 지배자들의 길로 들어섰다”는, 마치 종교적인 의식인 양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서 돈 만드는 재주가 가장 뛰어난 선수들에게서 한수 배우는 것, 출신 자체가 강력한 포트폴리오고, 수십억달러의 거래를 눈앞에서 목격하는 것이다. 여기까진 유토피아다.

책이 헤집은 건 마땅히 월가 새내기가 겪는 디스토피아다. 큰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듯한 격무에, ‘사람이 아닌’ 상사, 인간성을 다 포기해 바꾼 ‘월가맨’의 허상은 소설 ‘해리포터’에 나오는 감옥 아즈카반에 수시로 비유한다. 직접 보지 않아도 그림이 눈앞에 선한 건 “뉴욕 지하철에 몸을 던지고 싶은 충동”을 심심찮게 거론한 이들의 비탄 탓이다.

▲돈과 삶, 연봉과 도덕성…고민은 같더라

덕분에 책장은 한국 청년들이 놓인 상황을 수시로 오버랩한다. ‘잔치가 끝난’ 월가에 들어선 신입들은 ‘월가 생존 투쟁기’를 써대며 몸부림친다. 1년 차의 주 100시간 근무는 ‘당근’이고 스스로도 ‘모욕적’이라고 표현한 연봉 2만달러(약 2200만원)에 자신을 판다. 어찌어찌 연봉이 8만~16만달러쯤 됐다고 해도 일한 시간으로 따지면 시급은 16달러(약 1만 8000원)에 불과하다. 수탈적 자본놀이를, 심정적으론 거부할지언정, 몸은 적극 따라가는데도 결국 ‘2년 계약 정규직’으로 끝을 볼 가능성도 다분하다. 말 그대로 미국판 ‘미생’의 현장이며, 수없는 ‘장그래’가 포진한 거대한 포스터인 셈이다.

돈과 삶의 질, 연봉과 도덕성, 안정된 직장과 미래의 희망을 고뇌하는 미국 청춘들의 모습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개인의 행복과 일의 정당성 앞에서 자본이란 게 얼마나 유효한지를 되묻는 건 ‘끝내야 끝날’ 질문이었다.

▲엘리트주의에 대한 경고 혹은 금융본질 일깨움

결국 저자가 말하려 한 건 월가의 지속가능성이다. 또 회의론이다. 이렇게 단언한다. “수십년 이래 처음으로 월가의 막강한 영향력이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또 “이런 변화의 조짐이 결국 모두에게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이라고. 바닥에 깐 이 논지 덕분에 현장감 넘치는 사례들에선 한편으론 엘리트주의에 대한 경고가 읽히고 다른 한편으론 금융의 본질을 다시 들여다보자는 선언이 읽힌다.

다만 좀 거슬리는 건 ‘영 머니’다. 젊은이의 꿈과 희망을 돈으로만 헤쳐 모은 배경이 석연치 않아서다. 이들을 이끌 돈과 금융의 순기능을 제시하지 못한 한계가 두드러져 보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물론 가장 탄력적일 수는 있다. ‘올드 머니’라면 보이지 않았을 우물이었을 게다.

어찌됐든 저자는 작정했던 듯하다. 어느 한 중견사원의 충고까지 놓치지 않았다. “여긴 세상을 구하는 데가 아니야. 돈을 버는 게 목적인 곳이거든.” 다행히 ‘영 머니’도 바보는 아니었나 보다. “그 화려한 시절을 겪어본 건 아니지만 2007년 같은 세상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란 사실은 이미 받아들였어.” 그래도 체념만으로 이 지난한 과정의 해답을 만들 수는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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