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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누렇게 색 바랜 엘피(LP) 판들이 서가의 책처럼 천장까지 빼곡히 꽂혀 있다. 지난 24일 찾은 서울 중구 회현동 지하상가의 한 LP 중고 매장 앞. 평일 낮시간인데도 불구하고 40㎡(약 12평) 남짓한 가게 진열장 주변에는 5~6명의 손님들이 쭈그리고 앉아 30여분째 LP 판을 들추고 있었다.
“1969년 ‘조니 미첼’의 앨범을 찾으려 했으나 ‘앤 머레이’를 대타로 만났다”는 한 중년의 남성은 “LP 판은 직접 뒤지고 찾아봐야 그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며 “예상치 못한 귀한 LP를 구했을 때의 기쁨이 크다”고 LP 예찬론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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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문을 연 명동의 장인가게를 이어받아 운영해 온 이석현(46) 중고 LP 전문점 리빙사 대표는 “명동시절보다 유동인구는 줄었으나 얼마전 ‘토토가’ 열풍 이후 찾는 발길이 50%가량 늘었다”며 “10대부터 노인, 외국인까지 확실히 수요층이 다양해졌다”고 귀띔했다. 그 덕에 매출이 반짝 늘었단다. 하지만 그래봐야 매장을 운영할 정도. 이 대표는 “세계적으로 LP 유통 물량이 줄고 중고 온라인 사이트가 넘쳐나다 보니 문 닫는 매장도 늘고 있다”며 “그나마 우리 가게는 오랜 단골 덕에 명맥을 잇고 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LP의 매력을 ‘입체감’이라고 표현했다. MP3가 2D라면 LP는 3D라는 얘기다. 그는 “LP에선 가수가 옆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생생한 교감을 얻을 수 있다”며 “CD는 반사음을 삭제해 깔끔하지만 소리를 인위적으로 왜곡하는 반면 LP는 바늘이 판의 골을 지나면서 만나는 먼지의 음결까지 전달, 고역대부터 저역대까지 음색이 풍성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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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가 소장한 LP 중 최고가는 바이올리니스트 요한나 마르치의 ‘소나타’와 ‘파르티타’ 등 3장의 앨범으로, 몇 년 전 시세로도 약 1000만원대다. 옛것과 희귀가 만나면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뛴단다.
일부러 먼 곳에서 딸과 함께 매장을 찾았다는 안모(51) 씨는 “LP는 직접 닦아주고, 걸어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내가 노력한 만큼 가치를 얻는 거 같다”며 “적어온 목록 중 올드팝 6장을 5만 5000원에 구했다”며 흐뭇해 했다.
이 대표는 최첨단 디지털시대에 일고 있는 아날로그 열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녹음기술과 카메라 화소가 아무리 좋아졌다고 자연의 소리와 색을 고스란히 담는 것은 힘들다. 요즘 복고가 유행이라는데 단지 과거의 것을 추억할 수 있어서 찾는 것은 아닐 거다. 빠르고 바쁜 삶에서 벗어나 느리고 여유있는 삶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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