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포 속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월가 리더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데일리는 이번주 내내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금융협회(IIF) 멤버십 연례 총회에 직접 참석해 거물 인사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IIF는 세계 각국의 주요 민간은행·투자회사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세계 최대 민간 국제금융기관 연합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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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회장의 재정·통화 엇박자 경고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35년째 이끌고 있는 ‘큰 손’ 래리 핑크 회장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총회에 나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엇박자(divergence)를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가 계속 돈을 풀고 있으니, 중앙은행이 긴축을 해도 물가를 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블랙록은 운용 자산만 10조달러(약 1경4400조원)가 넘는다. 그래서 시장뿐만 아니라 각국 정계 등에도 영향력이 크다.
핑크 회장은 최근 인플레이션 고공행진을 두고 “요즘 미국과 유럽에서 나타나고 있는 정도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엇박자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은행은 수요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오직 한 가지의 능력만 갖고 있다”며 “그런데 (방만한) 재정정책은 금리를 더 자주 올리도록 강요한다”고 지적했다.
영국 영란은행(BOE)이 지난해 말부터 기준금리를 올리는 와중에 새 정부가 전격 감세안을 발표하면서 시장이 패닉에 빠진 게 대표적이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중간선거를 앞두고 각종 법안을 통해 돈을 풀고 있다.
핑크 회장은 각국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한 ‘마지막 전투’를 치르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꽤 민첩해야 할 것”이라며 “이것은 연방준비제도(Fed), 유럽중앙은행(ECB), 영란은행(BOE) 모두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들의 어려운 과제는 재정정책의 행태 탓에 더 어려워지고 있을 뿐”이라는 게 핑크 회장의 지적이다.
그는 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 업종에서 새로운 공급망을 빠르게 구축하고 있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물가 상승 압력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미국 물가는 연준의 공격 긴축에도 잡히지 않고 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9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8.2%를 기록했다. 월가 예상치(8.1%)를 웃돌았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1년 전보다 6.6% 뛰었다. 1982년 8월 이후 40년여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다.
핑크 회장의 지적은 하루 뒤인 13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입에서 똑같이 나왔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IMF 연차총회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려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함께 해야 한다”며 “통화정책이 브레이크를 밟을 때 재정정책이 가속페달을 밟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정책 엇박자는) 매우 위험하다”고 재차 주장했다.
핑크 회장은 세계 경제의 최대 뇌관으로 떠오른 영국에 대해서도 솔직한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영국 정부 인사들과 따로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이후 수백만명이 영국을 떠나며 노동력이 부족해졌다”고 했다. 영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부터 이미 고물가·저성장 징조가 만연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영국 정부는 훨씬 더 빠르게 이민 체계를 손 볼 것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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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먼 “연준 최종금리 4.5% 이상”
‘월가 황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도 인플레이션을 두고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이날 IIF 연차 총회에서 “인플레이션이 너무 뛰고 있다”며 “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은 연준이 금리를 4.00~4.50%까지 올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직감으로는 그보다 더 높이 인상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5% 이상의 최종금리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최근 미국 경제를 두고 너무 과열돼 있다고 진단했다. 인플레이션 고공행진은 쉽게 말해 상품·서비스 가격이 뛰어도 소비자의 구매 여력이 이를 따라잡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달 CPI가 예상보다 폭등한 것은 그런 결과다. 다이먼 회장은 “현재 미국 소비자의 재정 상태는 좋다”며 “한동안 계속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이먼 회장은 그 기간을 두고 ‘약 9개월’로 특정했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경기가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가계 재정 상황이 나빠지고 금리까지 5% 안팎으로 오르면 침체가 닥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이먼 회장은 “심각한 침체가 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나는 제롬 파월 의장을 여전히 믿는다”면서도 “침체를 유도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뜨거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준의 긴축으로 인해 스태그플레이션은 (예상보다) 훨씬 더 악화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이먼 회장은 아울러 연준의 양적긴축(QT)을 콕 찍어 거론하면서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들 수 있는 악재”라고 평가했다. QT는 금리 인상에 비해 역사적인 경험이 거의 없는 탓에 그 충격파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 시장은 금리 인상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QT를 두고서는 이렇다 할 분석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다이먼 회장은 “이것은 더욱 쉽게 침체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금융시장 충격파는 불가피하다고 역설했다. 다이먼 회장은 ‘심각한 침체’ 시나리오를 가정할 경우 시장은 지금보다 20~30% 더 빠질 수도 있다고 했다. 다이먼 회장은 최근 “(뉴욕 증시 주요 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가 앞으로 20% 더 하락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월가에 충격을 안겼는데, 이보다 낙폭이 더 클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날 차기 IIF 이사회 의장으로 지명된 아나 보틴 산탄데르은행 회장 역시 경기 예측의 불확실성을 토로했다. 산탄데르은행은 스페인 최대 은행이다. 그는 “미래가 얼마나 나쁠지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언젠가 침체가 닥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를 경고했다. 그는 그러면서 “충당금을 더 쌓는 등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